'짧은 소설'의 가능성
'짧은 소설'의 가능성
  • 제주일보
  • 승인 2017.07.0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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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전쟁은 끝났다.”

그는 독일군에게서 다시 찾은 고국으로 돌아왔다. 가로등이 침침한 길을 그는 급히 걷고 있었다. 어떤 여인이 그의 손을 잡고 술에 취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놀다 가세요? 잘해 드릴게요.”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가로등이 환한 등불 밑으로 왔다. 순간 여인은 “앗!” 하고 부르짖었다. 남자는 무심결에 여인을 등불 아래로 이끌었다. 다음 순간 남자는 여인의 두 팔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눈은 빛났다. “요안!” 하고 그는 여인을 와락 끌어안았다.”

허버트 릴리호의 ‘독일군의 선물’이라는 짧은 소설이다. 독일군에 유린된 프랑스군의 가족들이 비참하게 연명하고 있는 생활상이 심각하게 가슴을 친다.      

소설이 짧아지고 있다. 단편보다 더 짧은 콩트(conte)가 쏟아지고 있다. 콩트는 ‘장편(掌篇)소설’ 또는 ‘엽편(葉篇)소설’이라고도 한다.

짧디짧은 소설은 ‘손바닥 소설’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가볍고 일상적이라서 국내 순문학계에서 주류를 이루진 못했다.

“사람을 울릴 수 있는 열 단어 내외의 짦은 소설을 지어보라”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는 “팝니다: 유아용 신발, 한 번도 신지 않은(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이라고 지어주었다.

아기신발을 샀는데 아기가 죽어서 판다는 내용이다. 고작 여섯 단어로 애절한 슬픔을 묘사하고 있다. 헤밍웨이는 195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한국소설의 중심은 여전히 단편이다. 그러나 더 짧은 콩트를 쓰는 작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요즘엔 콩트 대신 ‘짧은 소설’이라고 부른다. 성석제의 소설집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을 비롯한 3권의 짧은 소설이나 이기호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와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가 요즘 잘 읽히는 소설책으로 꼽힌다.

‘장편소설(掌篇小說)’이란 장르는 일본문단의 ‘손바닥소설(掌の小説)’이라는 장르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문자 그대로 손바닥에 쓸 수 있는 정도의 짧은 소설, 즉 콩트의 의역어(意譯語)다. 콩트가 극히 짧은 소설이라는 의미로 통용될 처지라면,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콩트 대신에 장편소설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오히려 적당할 것이 아닐까.

콩트를 소설의 길이로 분류하자면 단편소설보다 더 짧은 분량이다. 대개 200자 원고지 20매 내외의 분량으로 되어 있다. 대개 인생의 한 단편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리는데 유머·풍자 기지를 담고 있다.

사실적이기보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바탕으로 하며 재치와 기지가 주된 기법이다. 또한 도덕적이거나 알레고리로 되어 있는 수가 많다.

모파상과 발자크, 알퐁스 도데, 투르게네프, 오 헨리 등이 콩트 작가로 유명하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나 볼테르의 ‘캉디드’도 콩트로 분류하기도 한다.

스마트 소설에서 짧은 길이보다 중요한 요소는 기발한 착상과 압축적인 구성, 촌철살인의 풍자, 해학적인 필치 등이다.

어쩐지 콩트는 죽은 말이 된 듯하다. 소설 유사품이라고 여기는 문단 풍토 때문이다.

콩트는 내용 진전이 클라이막스에 가서 예상외의 전변(轉變)을 보여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콩트의 콩트다운 특색은 실로 이 클라이막스의 급각적(急角的)인 전변에 있다.

소설은 작자가 자기의 눈을 통해 본 현실적 인생을 구성적(構成的)으로 서술한 창조적 이야기이다.

소설의 형식은 단편소설과 중편소설 그리고 장편소설의 3가지를 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단편소설보다 더 짧은 소설형식이 필요하게 되고 이 필요성에 따라 나타난 것이 장편(掌篇) 또는 콩트라는 아주 짧은 형식의 소설이다.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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