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꼬마리' 사라진 구럼비 지나니 중턱엔 낮달이 운다
'도꼬마리' 사라진 구럼비 지나니 중턱엔 낮달이 운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6.1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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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집의 올레이야기 24. 제7코스(서귀포~월평올레)-두머니물~월평 아왜낭목(7.9㎞)
‘썩은섬’, ‘석근섬’, ‘부도(腐島)’ 등으로 불려온 서건도.

[제주일보] # 두머니물과 서건도를 지나며

‘두머니물’은 법환마을과 강정마을의 경계선으로 어장 분규 사건을 해결하는 장소가 됐음직하다. 아기엄마들이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이곳에 와서 그 물을 먹고 목욕하면 젖이 잘 나온다니, 좋긴 좋은 물인 것 같은데 마셔볼 수 없다.

황근 복원지 알림판에는 ‘이 지역은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인 황근이 자생하는 곳으로 학술적 보존가치가 높아 2007년부터 1500 본 정도 복원했다’는데, 곳곳에서 바위와 잘 어울린 황근을 볼 수 있어 좋다. 그런데 바닷가 여기저기에 미역이 통째로 파도에 밀려와 그냥 썩어가는 것을 보면 아쉽기만 하다.

요즘은 수식어가 하도 발달해서 ‘기적’이란 말을 아무데나 갖다 붙인다. 간만의 차로 육지와의 사이가 잠시 드러났다 잠겼다 하는 것을 ‘모세의 기적’이란다.

서건도는 육지와 300m쯤 떨어져 있는 면적 1만3367㎡의 작은 섬으로 ‘썩은섬’,‘석근섬’,‘부도(腐島)’ 등으로 불러왔다. 간빙기 이후 얼마 동안 육지와 연결돼 있었는지 기원전 1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파편이 나오기도 한단다. 전에는 폭이 좁은 악근천에 낭만적인 다리를 만들어 건너기도 했는데, 잦은 태풍과 물의 범람으로 치워버려, 이제는 그냥 올라 악근교를 통해 냇가를 따라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다. 바닷가 우체국 전망대에서 보는 바위와 바다와 섬이 어우러진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내려와 강정유원지를 따라 걸으며, 물속을 유유히 헤엄쳐 올랐던 은어를 떠올려본다.

 

# 강정은 지금

도순천 위에 놓인 다리 ‘강정교’를 지나는 순간, 갑자기 숙연해진다. 이건 도무지 사람 사는 동네라고 느낄 수 없는 분위기다. 마을사람들이 10여 년 동안 줄곧 ‘무엇을 원했고, 어떻게 싸워 왔는가’는 거리의 글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길을 따라 걷는 올레꾼들은 무엇을 느끼며 이 참담한 거리를 걸을까’를 생각하며, 공사 때문에 끊어질 듯 이어진 길을 따라 겨우 강정포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정 이야기는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자초지종을 알 수 있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지난 9일 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에서 열린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제4차 임시회에서 ‘4·3해결과 해군 구상금 청구 소송 철회 촉구 결의문’을 채택하고, ‘10년 동안 이어진 강정마을 갈등문제 해결과 공동체 회복 지원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는 내용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소망해 본다.

 

# 강정마을의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강정에 대해서는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당사자가 아니면 그 아픔을 잘 모른다. 살기 좋다고 ‘일강정’이던 마을에 태어나, 지금까지 몸 붙여 살고 있는 이곳의 윤봉택 시인은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시방도 구럼비동산에 가면/ 나 설운 어멍 물매기 가는 잔영이 보인다./ 서귀포시 강정동 2742번지/ 개구럼비, 큰구럼비, 조근구럼비 답케를 가르는/ 도꼬마리 물코에 정갱이 걷어 부치고/ 물코판이에 서서/ 논두렁 다지시던 낡은 골갱이조록,/ 춘삼월 개구리 울음 따라 물매기하며/ 가름에 앉아 답회를 하던 그날 그대로인데,// 2015년 8월 11일 현장엔/ 포크레인 한방으로 찍어 날린 흔적 뿐/ 나 설운 어멍의 손깃 묻은/ 구럼비 도꼬마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도꼬마리 없는 구럼비는 구럼비가 아니다./ 도꼬마리 없는 일강정은 일강정이 아니다.// 모른다고만 한다./ 보지 못했다고만 한다./ 알지 못했다고만 한다./ 듣지 못했다고만 한다./ 전한 바가 없다고만 한다./ 하면,/ 팔짱을 낀 채 히쭉거리는, 그대들은/ 일강정의 심장 구럼비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일강정의 자존을 위해 구럼비에 남겨진 게 무엇인가.// 포클레인 다이너마이트로 부서진 게/ 구럼비 도꼬마리뿐이 아니다./ 좀녜들의 단골 개구럼비당, 개구럼비코지, 구답물, 모살덕, 선널, 진소깍, 톤여, 선반여, 할망물, 개경담, 소금밧, 중덕, 너른널, 서문의안통, 물터진개, 큰여, 몰똥여, 돗부리암여, 돗부리암, 톤돈지여, 톤돈지불턱, 솔박여, 세벨당, 막봉우지, 밧번지, 동도렝이안통, 동지겁// 우리는 여기에 서 있지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구럼비에서 들숨을 쉬지만 날숨을 쉴 수가 없다./ 일강정의 깃발 솔대가 쓰러지고/ 팔소장 목축이던 몰질이 갈라지고/ 혼올레 돌담이 하룻밤에 허물어지고// 집집마다 문지방 긁으며 토하는 각혈소리로/ 구럼비를 지나는 우리 미쁜 일강정// 하늘이 울고,/ 밤하늘이 울고,/ 허연 대낮이 울고/ 중덕 물마루에 걸린 낮달이 울고 있다.’

-윤봉택 ‘끝나지 않은 이야기·16 -구럼비 도꼬마리’ 모두

 

# 그날을 생각하며 월평해안을 걷다

손님이 없는 해녀식당에서 홀로 아줌마가 건네주는 보말 안주로 막걸리를 한 잔 했지만 도무지 기분이 서질 않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밖으로 나와 해변을 걷는다.

여기서 월평포구까지는 강정 땅이다. 해안선이 멀리 있는 것으로 보아 바다 깊숙이 바위가 뻗혀 있어 해산물이 많이 나게 생겼다. 그것을 증명하듯 여기저기 소라껍질이 쌓였다.

먹먹한 가슴을 누르며 걷는다. 강정은 낮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차라리 띠를 두르고 구호를 목청껏 외치던 때가 사람 사는 동네 같았다.

‘주민들에게 힘을 보태자’ 결의하고, 임진각에서 출발해 국도 1호선을 따라 눈 맞으며 릴레이식으로 걸어온 온 나라 참여 작가들의 목소리가 담긴 행낭을 받아 어깨에 메고, 제주 부두에서부터 줄곧 걸어와 마을 사람들과 조우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월평포구와 굿당산책로를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른 채 망연자실 종점 아왜낭목 쉼터에 서 있었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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