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때 감귤류 약재 '잇템' 진피·청피, 구분 놓고는 '설왕설래'
조선 때 감귤류 약재 '잇템' 진피·청피, 구분 놓고는 '설왕설래'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5.3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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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한의약, 그 역사속으로…<17>제주 과원의 설치와 그 성격(7)
허준의 ‘동의보감’ 내 진피와 청피 관련 내용 수록 부분-3쪽.
김일우 문학박사·㈔제주역사문화나눔연구소장

[제주일보] 지난달 4일 본란에 게재된 <표>에서 보듯이, 제주 감귤류 열매는 다양한 형태의 약재로 가공·상납됐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제주 감귤류 열매의 약재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대표적 것이 진피, 이어 청피였다.

진피와 청피의 경우는 국제적으로도 거래가 활발했다. 그럼에도, 진피와 청피 간의 구분과 관련해서는 혼선도 없지 않은 편이다.

앞서의 <표>를 보면, 제주목에서도 진피와 청피를 가공한 뒤 이를 각각 진상과 공물이란 2가지 세목의 형태로 모두 상납했다. 여기에서 진상은 제주의 최고 군사단위로의 제주영(濟州營)에서, 공물은 행정단위로서의 제주목에서 분담한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정의현과 대정현의 경우도 두 유형의 약재를 각각 상납했다. 다만, 이들은 모두 공물의 형태였다는 점이 제주목과는 달랐다.

이들 제주의 3개 읍이 매해 마다 상납했던 진피와 청피를 각각 합산해 보면, 진피는 103근, 청피는 85근에 이른다. 이들 가공에는 감귤 열매 4만5000여 개 정도가 소요되며, 이는 역시 <표>의 상납 감귤류 열매를 모두 합산한 8만6063(+?+?)개와 비교해서는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란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얘기했다.

한편 조선은 내의원(內醫院)과 전의감 및 혜민서 등과 같은 중앙의 보건의료기구가 중국산 진피를 대량으로 구매·수입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여러 정치집단은 조선으로부터 불경(佛經) 등을 제공받을 요량으로 국왕에게 다량의 진피·청피도 바쳤음을 무수히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이는 진피와 청피가 조선 초기부터 동아시아 삼국, 곧 명과 조선 및 일본에서 약재로서 널리 쓰이고, 약리적 효능의 명성도 높았음을 방증하는 사실이라 하겠다.

국제적으로도 진피와 청피가 감귤류 열매의 약재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럼, 진피와 청피는 어떻게 다르며, 분명한 구분이 가능한가. 이에 대해서는 옛적부터 논란이 돼 왔었던 것 같다.

우선, 중국 문헌을 보면, 진피는 음력 10월에 익었을 때 완전히 노란색을 띤 열매의 귤껍질을 오랫동안 건조·저장, 이른바 묵힌 것이라 한다. 이어 청피는 완전히 노랗게 익는 부류와는 다른 품종의 감귤 열매에서 육질을 제거한 후 강한 햇볕에 말린 것으로 보는 논의가 있다.

반면, 청피는 다 익지 않아 푸른색을 띤 감귤, 곧 미숙과의 귤피를 말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더욱이, 청피는 미숙과, 혹은 완전히 노랗게 익는 부류와는 다른 품종의 감귤 열매에서 속살을 제거해 말린 것의 2가지 모두를 칭한다는 견해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문헌은 진피와 청피를 구별하고, 그 차이점을 뚜렷이 서술한 것은 드문 편이다. ‘동의보감’과 같은 경우도 진피와 청피란 용어를 각각 쓰고, 이들이 각각 맛과 약리적 효능이 서로 다름에 대해서는 밝혀놓았다. 그럼에도, 진피와 청피의 차이점과 관련해서는 “청귤피(靑橘皮)…지금의 청귤이란 것은 황귤(黃橘)과 비슷하나 작고 별도의 다른 품종이다. 따서 속살을 제거한 후 강한 햇볕에 말린다(본초(本草))”고 하듯이, 중국 문헌 가운데 하나인 ‘본초도경(本草圖經)’의 인용에 머물고 말았던 것이다.

진피와 청피의 차별성은 조정철(趙貞喆)이 지은 ‘귤유품제(橘柚品題)’란 한시(漢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정철은 1777(정조 1년)~1790년까지 제주, 이어 추자도와 전라도 광양(光陽) 및 황해도 토산(兎山)에서도 유배생활을 하다가 1807년(순조 7년) 풀려나 다시 관직에 나아갔고, 1811(순조 11년)~1812년에는 제주목사로 왔었다. 그가 제주목사로 왔을 때 ‘귤유품제’를 통해 제주 감귤류로서 유감(乳柑)·별귤(別橘)·대귤(大橘)·당금귤(唐金橘)·동정귤(洞庭橘)·소귤(小橘)·당유자(唐柚子)·감자(柑子)·금귤(金橘)·유자(柚子)·산귤(山橘)·청귤(靑橘)·지귤(枳橘)·등자귤(橙子橘)·석금귤(石金橘)을 거론했다.

이로써 19세기 전반 제주 감귤류는 15품종에 달했음도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 감귤의 특징에 대해서도 자세히 얘기했다. 이 가운데 산귤과 등자귤은 그 껍질을 취해 말려서 진피를, 청귤은 그 껍질을 가지고 말려 청피를 가공한다고 밝혔다.

조정철의 경우는 진피와 청피를 각각 감귤류 열매의 품종에 따른 구분이라 하는 한편, 청피는 청귤의 귤피를 가공한 것이고, 그 이름은 청귤로부터 유래했다고 본 듯하다. 특히, 진피는 주로 산귤의 껍질로부터 가공된 것이라는 이해는 오늘날까지도 제주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진피와 청피에 대한 옛적의 문헌기록과 덜 익은 ‘풋귤’ 관련 현재의 논의를 감안한다면, 진피는 익어서 완전히 노란색을 띤 감귤류 열매의 귤피를 2년여 이상 건조·저장한 것이고, 청피는 덜 익은 상태의 감귤 열매에서 푸른색 껍질을 취해 말린 것으로 이해함이 무난할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피는 청귤이란 품종의 감귤 열매의 껍질로부터 가공됐던 것과 연유해 그 이름이 붙여진 적이 있었음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겠다.

 

▲잉어껍질을 이용해 좋은 진피 만드는 법 - 귤 껍질을 싸서 향기를 보존

김태윤 한의학 박사·(재)제주한의약연구원 이사장

한약재는 대부분 자연에서 얻거니와, 약효를 좋게 하려면 때 맞춰 채취해야 한다. 귤피, 진피를 가공할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11세기 후반 ‘본초도경’도 “겨울에 이르러 노랗게 익으니, 먹을 수 있고…10월에 따니 이 모든 것이 바로 ‘황귤’이다(至冬而黃熟, 乃可噉…十月採 都是今黃橘也)”라 했던 것이다.

귤피는 유기농이나 무농약으로 재배한 귤의 껍질을 사용한다. 농약을 사용 해 재배한 귤일지라도 철저한 세척과정을 통해 제거하면 사용할 수 있다. 현재 귤피를 만드는 법은 우선 풍건(風乾)한다. 이는 노랗게 익은 귤을 물로 잘 세척해 이물질을 제거한 후 상온에서 귤껍질에 물기가 없을 때까지 바람에 말리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폭건(曝乾)한다. 곧, 풍건을 거치고는 과육을 제거한 뒤, 햇볕이 강할 때 귤껍질을 바싹 말린다. 마지막으로는 잘 건조된 귤껍질을 바람이 잘 통하고 습기가 없는 그늘진 곳에서 말리는 것이다. 이를 양건(晾乾)이라 일컫는다. 이후 저온 저장한다.

한편 5세기 ‘뇌공포자론’을 보면, 귀한 귤피를 오래 저장하고 좋은 진피를 만드는 방법으로 “반드시 귤껍질의 하얀 막 1층을 제거하고, (이어) 잘게 썰어 잉어껍질로 싸서 하룻밤 재우고, 날이 밝으면 꺼내 사용한다(須去白膜一重, 細剉, 用鯉魚皮裹一宿, 至明, 出, 用)”고 했다. 우선, 이는 말랑말랑한 성분의 중과피를 없애고, 향기로운 휘발성의 기름, 곧 정유(精油)가 많은 외과피를 사용하기 위함이다.

중과피의 경우는 쓰고 맵고 떫으며 약간 단 맛이 나고, 또한 소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귤피의 흰 부분을 없애고 묵힌 것은 이진피(理陳皮)라 한다. 다음 잉어껍질로 싸는 것은 지방의 자동산화에 의해 생기는 특유의 기름 냄새, 곧 불쾌한 냄새로 향이 나빠짐을 막기 위함이다. 귤피를 잉어껍질로 밀폐·보관하면, 산소를 차단해 정유의 산화가 덜 진행되는 것이다. 이는 약물의 성분을 파악한 뒤, 그에 따라 별도의 용기에 보관토록 함을 말한다. 오늘날에도 이 방안은 과학성이 높다고 하거니와, 섬유질과 향이 강한 채소요리에 응용되기도 한다. 고기로 야채를 싸서 재운 후 먹거나, 고기에 야채를 돌돌 감아 먹기도 하는 것이다. 이밖에 기름을 조금 넣어 무치면 야채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향기가 유지되기도 한다.

결국, 약물의 성분에 따른 방식을 통해 부패되지 않게 저장함으로써 오랜 숙성을 거친 진피가 만들어진다. 이로써 오래 묵히면 좋아지는 6가지 약, 곧 ‘육진양약(六陳良藥)’의 하나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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