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이 멈추지 않으려면
대중교통이 멈추지 않으려면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7.05.1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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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흔히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영락없다’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의 본 의미는 어떤 숫자를 나눌 때 딱 맞아 떨어져서 나머지가 ‘0’이 된다는 말에서 출발한다. 조금도 틀리지 아니하고 꼭 들어맞는다는 의미다.

제주도가 오는 8월 시행을 목표로 대중교통체계 개선책을 지금 한창 다듬고 있다. 이 계획은 지금의 버스 운행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급행버스가 도입되고 이른바 환승센터와 환승정류장이 설치, 운영된다.

현행 시내·외 버스로 나눠 운영되는 체계를 시내버스로 단일화 하고, 노선이 단순화 된다. 현재 총 644개 노선이 140개 노선으로 줄어든다. 급행버스와 간선·지선버스 이용자들이 쉽고 편하게 환승할 수 있도록 환승 시스템이 보강된다.

이 뿐만 아니다. 제주시 도심을 관통하는 간선도로엔 버스 우선차로제가 시행된다. 제주도가 버스 운행시스템에 대한 대개편을 단행한 것은 한편으로 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제주라는 한정된 공간에 하루 평균 100대 가까운 차량이 늘면서 빚어지는 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교통체증과 불법주정차가 일상이 됐다. 결국 대안으로 대중교통의 중심축인 버스에서 ‘길’을 찾게 됐다.

제주도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개선책 시행에 따른 주민공람을 실시하고 있다.

 

#하루 15만명 이용 ‘도민의 발’

버스는 단거리뿐 아니라 중장거리를 운행하는 최적의 운송수단이다. 이 때문에 한 때 ‘서민의 발’로 통용됐다. 그런데 이젠 이게 옛말이 됐다.

제주도민들의 중추적 이동수단으로 자리를 다졌다. 지난해 제주지역 버스 이용객(연인원)은 연간 5670만명에 이른다. 이는 하루 평균 제주도민 15만5000명이 버스를 이용하는 셈이다.

물론 환승 등으로 한사람이 여러 번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제주도민이 66만명인 점을 감한할 때 버스 이용객 비중은 절대적이다. 단순 수치만 놓고 볼 때 도민 4명 가운데 1명은 하루에 한번 버스를 이용하는 셈이다.

제주도는 개선책의 일환으로 버스 우선차로제를 시행하고 이에 따른 시설공사를 곧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당장 일반 차량운전자들의 반발이 빗발칠 것은 불 보듯 자명하다. 가뜩이나 지금도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마당에 차선을 막고 공사를 벌인다면 이로 인한 불편과 교통 혼잡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이 같은 혼란과 민원은 새로운 노선이 시행되는 오는 10월 이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그래서 벌써부터 제주도청 주변에선 우려의 시선이 잇따른다. 과연 제주도가 들끓는 원성과 몰매를 이겨낼 ‘맷집’을 키웠냐 하는 점이다.

 

#제주도 정책추진 역량 시험대

과거 도정에서 이뤄진 각종 뒤틀린 정책들을 뒷수습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한 원희룡 제주도정이 그나마 잘한 정책을 꼽는다면 ‘개발중심의 정책’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린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당초 취지보다 다소 후퇴했지만 자연녹지에서 개발행위를 제한하는 도시계획조례 개정이다.

이어 오는 10월부터 시행되는 대중교통체계 개편과 사회초년생으로 상징되는 젊은세대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행복주택사업이 꼽힌다. 원 지사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도시계획 조례 개정과정에서 이른바 기득권으로 상징되는 개발업자들이 보였던 조직적 반발은 지금 제주사회의 본 모습이다. 따라서 대중교통체계 개편 또한 이에 버금가는 우여곡절이 따른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제주도의 정책추진 역량과 나아가서는 제주도민들의 자치역량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제주도의 대중교통 개선책이 ‘영락없다’라는 단어의 의미처럼 현장에서 한 치의 모자람도 남는 것도 없이 정확하게 시행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락없다’에서 ‘없다’를 빼고 ‘영락(零落)’만 쓰거나 ‘영락하다’라고 쓰면 전혀 다른 뜻이 된다. 보잘 것 없다는 뜻이다. 졸속의 의미와 상통한다. 제주도의 대중교통체계 개선책이 졸속이란 소리를 들어선 곤란하다. 대중교통에 거는 도민들의 기대가 너무 멀리 왔다.

두들겨 맞을 때 맞더라도 지금 할 일은 만반의 준비뿐이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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