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조선 초부터 국내 유일 ‘감귤류 열매’ 약재 상납
제주, 조선 초부터 국내 유일 ‘감귤류 열매’ 약재 상납
  • 제주일보
  • 승인 2017.04.19 1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한의약, 그 역사속으로…<14>제주 과원의 설치와 그 성격(4)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조 약재 항목 중 지각·청피·진피 수록 부분(사진 왼쪽). 향약집성방 수록 ‘해백탕’(제주 감귤류 열매의 약재도 배합해 만든 향약 처방) 관련 기록(오른쪽)
김일우 문학박사·㈔제주역사문화나눔연구소장

[제주일보] 조선정부는 초창기부터 향약 이용의 1차 의료시스템 구축을 지향·실현해 나아갔다. 이는 1433년(세종 15) ‘향약집성방’의 편찬·발간으로 이어졌다. 이후 본서 수록의 향약이 일반인의 병 치료에도 활용되는 추세가 가속화됐거니와, 그 향약에는 제주 감귤류 열매의 약재도 포함됐다. 이로써 제주 감귤이 다양한 국가적 용도 가운데 약재로서의 쓰임새에 가장 대규모의 물량이 들어갔음이 드러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지난번 이야기했다. 오늘도 이와 관련된 얘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세종은 ‘향약집성방’이 완간되는 해보다 9년이 앞서는 1424년(세종 6)에 지지(地志) 편찬을 명했다. 이것이 ‘세종실록지리지’로 이어졌다고 본다. 통상, 지리지는 국가가 전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각 행정단위의 자료를 통합적으로 수집해 편찬됐다.

특히 본 지리지의 경우는 국내 산출의 약재도 각 도(道)와 군현단위별로 수록돼 있다. 이는 향약이 국가의 조세와 각종제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었음을 의미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또한 ‘향약집성방’에 702종의 향약이 수록된 것도 ‘세종실록지리지’ 편찬을 위한 사전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하겠다. 여기에서도 세종이 향약 이용의 1차 의료시스템 구축을 위해 장기간에 걸쳐 노력했고, 그것이 마침내 ‘향약집성방’의 편찬·발간으로 이어진 다음, 본서 수록의 향약이 민간에도 실용화되기에 이름으로써 결실이 맺어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제주의 경우도 약재로 쓰이는 향약이 기재됐다. 이 가운데 감귤류 열매의 향약으로, 제주목은 진피(陳皮)·청피(靑皮)·지각(枳殼), 정의현은 진피·지실(枳實)·청피, 대정현은 지실·청피·진피가 각각 올라가 있다.

또한 이들은 ‘향약집성방’에도 나온다. 진피와 지실의 경우는 ‘향약집성방’의 ‘薤白湯(해백탕)’조를 보면,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생기는 병, 곧 구토증과 식욕부진 치료에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처방에 쓰이고 있음이 확인된다.

곧, ‘해백탕은 비위가 약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며, 먹으면 바로 토하고 팔다리가 여위고 약하며 기운이 없는 것을 치료한다. 산달래 비늘줄기 7개 및 멥쌀 2분의 1 홉과 아울러, 대추 4알, 각각의 수치(修治)과정을 거친 진피 3돈과 지실 4알 등등의 약재를 썰어 한데 모아서 큰 사발로 물 1대접 반을 넣은 다음, 80% 양이 남을 정도로 달이고, 찌꺼기를 제거한 뒤, 때를 가리지 말고 조금 뜨겁게 2번에 나눠 마신다’고 돼 있는 것이다.

한편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감귤류 열매의 약재가 경상·전라도 산출의 약재로도 기재돼 있음이 확인된다.

이들은 모두 도 행정단위의 약재 항목조에도 올라가 있는 것이다. 이를 보면, 경상도 경우는 지각·청피·진피, 전라도는 지각·진피·청피의 순으로 수록돼 있다. 이 가운데 후자는 제주지역이 전라도와 영속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제주 산출 감귤류 열매의 약재가 전라도 산출의 약재 항목에도 올라갔다고 하겠다.

반면, 경상도 경우는 제주지역과는 전혀 행정적 영속관계가 없음에도 감귤류 열매의 약재가 경상도 산출의 약재로도 수록돼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가 제주 감귤류 나무를 경상도 연안지방에 옮겨 심은 사업을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아갔던 일과도 관련해 생각해볼 수도 있다. 곧, 경상도 연안에 옮겨 심은 제주 감귤류 나무에서 거둔 열매가 약재화의 과정을 거쳐 경상도 산출의 약재 항목조에 수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경상도 관내 동래현의 경우는 토산물로서 상납했던 물품 가운데 ‘橘(귤)’도 들어가 있다. 물론, 동래현 산출의 귤에서도 귤피, 혹은 진피를 당연히 가공해 낼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약재로서 취급되지는 않았을 듯싶다. 우리나라에서 감귤류 열매가 제주 외의 곳에서도 났다고 손치더라도, 약재로 쓰는 것은 오직 제주에서 나는 감귤류 열매일 뿐이라 했다. 이는 허준이 ‘동의보감’에서 명백히 밝혀놓았다. 이로 봐, ‘세종실록지리지’에 경상도 산출의 약재로 수록된 지각·청피·진피도 제주에서 산출된 감귤류 열매에서 가공한 다음, 그것이 경상도 감영의 구매, 혹은 제주목과의 물물교환을 통해 경상도 감영으로 건네졌을 듯싶다. 이후 이들이 경상도에서 도 행정단위의 약재로서 상납하는 산물로 파악된 것이라 하겠다.

제주는 조선 초창기부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감귤류 열매의 약재를 상납했던 곳이다. 그것도 경상도지역에 부과됐던 몫까지 떠맡았다고 보인다. 그런 만큼, 제주 감귤의 상납 물량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는 향약 이용의 1차 의료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시대적 추세와 부합하는 사실이라고도 하겠다.

 

▲귤 껍질의 수치(修治)와 그 이유(2) - 약재 효능 높이고 증상 따라 가공

김태윤 한의학 박사·(재)제주한의약연구원 이사장

오늘도 지난 회에 이어 계속 귤피를 수치하는 형태와 그 이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지난번에는 네 가지를 이야기했다.

이어 다섯 번째는, 약재로서 불필요한 부위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는 택하려는 부위의 약효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5세기 ‘뇌공포자론(雷公炮炙論)’에 “반드시 귤피의 하얀 막 1층을 제거하고 잘게 썬다(須去白膜一重, 細剉)”라고 했다.

한편 13세기 후반 약성부(藥性賦)에는 하얀 막이 쓰고 맵지만 약간의 단 맛이 들어있는 터이라, “그 단 맛이 붉은 껍질의 매운 맛을 완화시킬까 두렵다(恐甘緩其辛也)”, 이어 “담을 삭이고 체기를 풀기 위해서는 하얀 막을 제거하라(去白者消痰泄氣)”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탕액본초(湯液本草)’에서도 “만약 가슴부위에 답답한 체기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흰 껍질을 제거하라(若理胸中滯氣須去白)”고 한다. 이들은 가슴 속 체기의 약재로서 귤피를 쓰려면, 여기에 불필요한 부위, 곧 귤피 중 ‘흰껍질’을 제거해서 씀이 약효를 높인다고 했던 것이다.

여섯 번째는, 강한 성질을 죽인다. 귤피는 다른 약재에 비해 정유를 더 많이 함유한 편이다. 16세기 ‘의학입문(醫學入門)’에도 “진피는 끓인 물에 담거나 씻어 바싹 말리는 성질을 죽인다(陳皮用湯泡洗, 去其燥性)”고 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 장빙청(張秉成)도 ‘본초편독(本草便讀)’에서 “귤피는 맛이 쓰고 매우며 향기가 있어 성질이 조열하다(橘皮…味苦辛…氣香質燥)”고 했다. 귤피의 쓰고 매운 맛 그리고 강한 향을 줄이기 위해 물을 사용하거나 오래 보관해야 하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약효를 더욱 좋게 한다. 소금은 인체 내에서 약물을 밑으로 내리는 약리작용을 일으킨다. 귤피를 소금으로 수치하면 음(陰)의 기운을 보함과 동시에 화(火)를 내리는 작용도 나타난다. 이로써 생체 내 정상체액이 변질화해 생기는 담(痰)을 치료하는 것이다. ‘본초편독’에서도 “귤피는 소금물로 볶으면 담을 치료하는데 탁월하다. 역시 담의 근본을 치료하는 것이다(橘皮…用鹽水炒極能治痰…亦治痰之本也)”라 했다. 이는 수치를 통해서 약효가 상승됨을 뜻하는 것이다.

끝으로 맛과 향을 높이기 위해 첨가물을 사용하곤 한다. 대표적인 첨가물로는 차(茶)의 잎을 들 수 있다.

결국, 귤피의 수치는 약재로서의 효능을 높이는 한편, 증상에 따라 귤피의 부위를 택하는 가공의 과정을 말함이다.

제주일보 기자  kangm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