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4·3의 아픔과 희망'
'길 위에서 만난 4·3의 아픔과 희망'
  • 현봉철 기자
  • 승인 2017.03.30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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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조천읍 북촌마을 4·3길

[제주일보=현봉철 기자] 제69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이 ‘4·3의 평화훈풍! 한반도로 세계로’를 슬로건으로 걸고 4월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다.

올해 69주년을 맞기까지 희생자 유족들은 숨죽여 지냈던 나날을 견디며 4·3특별법 제정과 진상 규명, 대통령 사과, 국가추념일 지정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국가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을 놓고 이념 논쟁으로 초점을 흐리는가 하면 4·3특별법과 진상보고서 등을 흔들려는 시도 등은 여전하다.

제주4·3을 이해하려면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마을’과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마을’, 제주시 조천읍 ‘북촌마을’ 등 3곳에 조성된 4·3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3길을 걷다보면 한적한 작은 마을들에 닥친 광풍이 아름다운 마을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슬픔을 견디며 아픔을 이겨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북촌마을 4·3길은 동광마을, 의귀마을에 이어 세 번째로 조성된 4·3길이다.

북촌마을은 4·3사건 당시 418명의 주민대학살이 발생한 4·3 최대 피해지 중 하나다. 1949년 1월 17일 하루에만 300여명의 주민이 학살당했고, 지금도 매년 음력 12월 19일만 되면 마을주민 대부분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북촌마을의 비극은 소설가 현기영이 1978년 소설 ‘순이삼촌’을 출판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시대적 금기를 깨며 4·3사건의 실체를 공개한 이 소설에서 순이 삼촌은 4·3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제주도민 그 자체였다.

북촌마을 4·3길은 너븐숭이 4·3기념관을 출발해 마을 서쪽의 서우봉 학살터(몬주기알), 환해장성, 마을의 문화유산인 ‘가릿당’, 4·3의 역사가 많은 북촌포구, 낸시빌레, 꿩동산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1949년 1월 17일(음력 12월 19일) 300여명 이상이 희생당했던 ‘북촌대학살’의 현장인 당팟과 북촌초등학교도 포함된다. 길이는 약 7㎞이다.

걸어서 2시간에서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길의 출발은 너븐숭이 4·3기념관이다.

기념관에서 북촌 집단학살의 발생 배경과 과정, 4·3 진상규명 노력 등을 확인할 수 있고, ‘순이삼촌’의 초판본과 외국어 번역판 등을 볼 수 있다.

인근에는 위령비와 4·3사건 당시 희생된 유아들이 매장돼 있는 애기무덤, 순이삼촌비가 있다. 순이삼촌비가 누워 있는 이유는 ‘뽑아놓은 무처럼 널브러져 있던’ 희생자들의 시신을 상징한다.

서우봉 절벽인 몬주기알 아래에는 4·3 당시 북촌과 함덕 주민들이 은신처로 이용했던 천연동굴이 나온다. 1948년 이곳에서 북촌 주민들이 대거 희생됐다.

환해장성과 북촌마을의 본향당인 ‘가릿당’, 북촌포구를 지나면 또 다른 학살현장인 낸시빌레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마을 청년 24명이 희생됐다. 이어 무장대의 습격으로 군인이 희생된 꿩동산과 4·3 당시 은신처인 ‘마당궤’를 볼 수 있다.

다시 길을 걸으면 4·3 당시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주민들 가운데 100여 명이 집단학살된 ‘당팟’이 나오는데 인근에 자리한 제주목사 선정비에는 4·3 당시의 총탄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마을 안길을 돌아 북촌초등학교를 거쳐 나오면 출발 장소였던 너븐숭이가 다시 나온다.

‘그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다’

‘순이삼촌’에 나온 이 구절처럼 4·3의 아픔은 현재 진행형이다.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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