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논쟁 악순환 고리 끊어야...정명 확립 시급
이념 논쟁 악순환 고리 끊어야...정명 확립 시급
  • 김현종 기자
  • 승인 2017.03.2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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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69주년…미래를 논하자] 잇단 소송 제기, 국정교과서 왜곡.축소...성격 규정 필요성 부각

[제주일보=김현종 기자] 제주4·3은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제69주년을 맞기까지 4·3특별법 제정과 진상 규명, 대통령 사과, 국가추념일 지정 등의 성과가 적지 않은 반면 이념 논쟁과 흔들기 논란도 여전하다.

내년 4·3 70주년을 즈음해 그 동안 민간 주도 진상조사와 공론화의 1단계, 제도적 장치 마련의 2단계에 이어 과거사 청산 모델 정립 등을 위한 3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제주일보는 4·3의 완전한 해결과 미래 가치 찾기를 3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상> 미완의 역사…이념 굴레 벗어야

올해 초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역사교과서는 제주4·3사건에 대한 이념 논쟁의 연장이었다.

교과서는 4·3사건에 대해 ‘1947년 3‧1절 기념대회에서 경찰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했고 1948년 4월 3일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고 기술했다.

4·3 발발 배경 등이 축소‧생략돼 남로당 제주도당이 원인 제공자로 해석될 여지가 큰 내용으로 ‘4·3은 공산세력에 의한 폭동’이란 우편향 시각과 다르지 않다. 4·3희생자도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2만5000~3만여 명으로 추정됐음에도, 교과서는 ‘4·3평화공원에 1만4000여 명 희생자 위패가 안치돼 있다’고 썼다. 희생자 규모에 대한 의도적 축소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4·3역사 정립에 대한 ‘역류현상’은 새롭지 않다. 일부 보수인사들은 2014년 12월 4·3희생자 63명에 대한 결정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하고 이듬해 3월 4·3평화기념관 전시금지 소송도 냈지만 모두 패소했다.

이들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3특별법과 4·3희생자 결정 등과 관련해 헌법소원과 국가소송, 행정소송 등 6건 소송을 냈다가 기각 또는 각하됐는데도 4·3 흔들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4·3특별법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부정하는 행위가 지속되는 셈이다.

4·3은 미완의 역사다.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도 ‘4·3특별법 목적에 따라 진상 규명과 희생자‧유족의 명예회복에 중점을 뒀으며 4·3 전체에 대한 성격이나 역사적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이는 사가들의 몫’이라고 밝힌 가운데 최근 들어 4·3 정명(正名)의 필요성이 부각하고 있다.

동학이 민란‧반란‧폭동‧내란 등으로 불리다가 동학혁명 또는 동학농민전쟁이란 정명을 회복했듯이 제주4·3도 역사적인 조명과 평가를 통해 하루빨리 올바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공산무장 폭동‧반란’으로 규정됐던 4·3이 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사건’으로 머물면서 이념논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정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열린 4·3 학술대회 등을 통해 “4·3의 성격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며 “4·3이 무장대와 토벌대 간 무력충돌 속에 무고하게 양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만 해석된다면 제주도민은 역사의 객체로서 무기력하게 존재할 뿐”이라며 정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 전문가는 “4·3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고 바로 그 필연적인 이유 속에 4·3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며 “이를 객관화할 때 무의미한 이념논쟁을 끝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4·3 관련 단체나 기관 관계자들은 4·3 관련 이념 논쟁을 종식하기 위해 4·3 흔들기에 대한 처벌 방안 마련과 4·3특별법에 ‘정의의 원칙’ 명시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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