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의 ‘제주’
제주항공의 ‘제주’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7.03.2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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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망각 또한 신의 배려.’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한 드라마에 나온 대사의 일부다. 이 드라마의 인기만큼 이 말 또한 인구에 회자됐다. 이 말대로 ‘잊을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생의 축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잊을 수 있다’는 의미인 망각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왕왕 불러온다. 특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은 경우, 그 결과는 당사자는 물론 상대방에 씻을 수 없는 생채기로 남게 된다. 따라서 ‘망각 또한 신의 배려’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적어도 소통과 공감이 함께해야 한다.

제주도와 제주항공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급기야 법정싸움으로 갔다. 제주항공은 오는 30일부터 제주기점 국내선 운임을 최대 11.1% 인상하기로 했다. 제주도는 이를 용인할 수 없다며 지난 22일자로 ‘항공요금 인상 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법원에 냈다.

제주도의 제주항공 주식비율은 제주항공 출범당시에는 25%를 차지했지만, 이후 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현재는 7.75%로 낮아졌다. 그래도 제주도는 여전히 제주항공의 창업 대주주다.

 

#“도민의 사랑, 시발점”

“그룹 차원에서 제주도가 지역항공사를 설립한다는 것을 알고 준비했다. 할아버지가 제주도 남제주군에서 현감을 지냈고, 부친(애경그룹 창업자 고(故) 채몽인씨)도 제주에서 태어났다. 제주도민들로부터 얼마나 사랑받는가가 지역항공사의 시발점이다.”

2004년 당시 제주도의 지역항공사 사업 파트너로 선정된 애경그룹 지주회사인 ARD홀딩스㈜ 채형석 대표이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채 부회장은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이다.

제주항공의 출발점은 다 아는 것처럼 거대 항공사의 일방적 요금인상이다. 2004년 제주는 거대 항공사의 항공요금 인상 문제로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었다.

그해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제주도지사와 시장 군수, 그리고 제주도의회 의장 등 은 당선증을 받자마자 거대 항공사의 항공료 인상에 반발, 건설교통부 등을 항의 방문했다.

이게 도화선이 됐다. 이번 기회에 아예 요금이 저렴한 지역항공사를 만들어 거대항공사들의 요금농단에 쐐기를 박자는 도민 공감이 싹텄다. 지방정부인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의기투합했다. 결국 애경그룹을 파트너로 하는 지금의 ‘제주항공’이 닻을 올렸다.

13년 전 이맘때 제주와 육지를 연결하는 사실상의 절대적 교통망인 ‘제주 하늘 길’ 요금인상에 불복한 제주도민들의 응어리가 결집된 게 곧 제주항공이다. 이 때문에 항공사 이름에 ‘제주’가 쓰였다.

 

#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제주관광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주항공의 항공요금 인상은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것이다. ‘제주’라는 이름을 단 항공사답게 어려운 현실을 공감하고, 제주도와 함께 지혜를 모아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

이달 15일 제주도의 임시회에서 신관홍 제주도의회 의장이 제주항공의 요금인상 유보를 촉구하면서 한 폐회사의 일부다.

항공요금의 인상은 비단 제주항공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국내 5개 저비용항공사(LCC)를 비롯해 아시아나 항공 등은 최근 일제히 국내선 요금을 올리는 중이다. 지난 1월 이후 진에어를 필두로 티웨이 항공이 요금인상을 단행했다. 이스타항공과 에어부산도 곧 요금을 올린다. 아시아나 항공도 다음달 요금인상에 가세할 태세다.

업계의 입장은 물가상승과 영업환경 개선을 위해 불가피 하다는 것이다. 업계의 주장이 틀린 게 결코 아니다.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도 이들의 입장에 지금의 사회정서, 특히 제주의 정서는 선뜻 함께하기 어렵다.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한명의 관광객이라도 더 불러들여야 하는 제주는 지금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아예 요금을 올리지 말자는 게 아니다. 우선은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중국의 사드 보복이라는 지금의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것이다.

제주항공은 13년 전 출발 때 제주와의 약속을 잊고 싶을지 모른다. 신이 존재한다면 지금 제주항공의 망각 또한 ‘배려’할지 의문이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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