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가족에 대한 상식 뒤집기…발칙한 인생론
결혼·가족에 대한 상식 뒤집기…발칙한 인생론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3.0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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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추천하는 이달의 책] '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장강명 작가

[제주일보]  2016년 9월, 공항에서 그를 기다리며 싸인 받을 요량으로 구입한 <5년 만에 신혼여행> 뒷부분을 차 안에서 마저 읽었다. 근 한 시간 연착으로 허둥지둥 공항 밖을 나오는 그는 40대 초반 나이와 달리 개구쟁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기획하며 작가를 섭외할 때는 항상 조심스럽고 떨린다. 특히 작가 섭외 전 그의 책을 몇 권 읽고 난 후라면 더욱 그렇다.

<댓글부대>로 제주 4.3평화 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는데 제주도와는 연고가 없는 사람인데다 작품 또한 4.3과는 직접적인 관련 없는 내용이기에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프로필만 봐도 공대 출신에, 신문기자를 하다, 소설가로 직업을 바꾸면서 문학상을 연달아 휩쓸며 다작을 하고 있는 그의 정체가...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 요즘 세태에 맞춘 시선을 끌만한 소설을 써오던 그가 가벼운(?) 에세이집을 냈다. 그의 작품들은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아한다. 이 책에는 그의 생각, 철학, 인생관 등을 더욱 깊이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히 좋았다.

<5년만에 신혼여행>은 <한국이 싫어서> 속 주인공 계나와 남자친구 지명. 현재 장강명 작가와 그의 부인 HJ를 모델로 쓴 에세이로, 읽으면서 <한국이 싫어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결혼식은 고사하고 신혼여행마저 혼인신고 5년 만에 떠나는 ‘나’와 HJ. 3박 5일 일정의 신혼여행 이야기를 여행 책에 흔히 있는 사진 한 장 없이(간간이 일러스트가 있긴 하다) 200페이지가 넘는 에세이집으로 풀어냈다는 건 그가 이야기꾼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아침을 먹고, 쇼핑을 하고,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는 그 흔한 일상이 그의 손을 거치며 단순하지 않은 글이 된다.

그는 신혼여행 이야기에 덧붙여 우리나라의 결혼에 대한 허례허식, 과장되고 미화되어 있는 가족의 모습을 비판한다. HJ를 마뜩찮아 하는 부모님 댁에 명절날 굳이 데리고 가지 않으면서 이상적인 삶에 필요한 리스트 중 하나가 ‘효도 셀프’라고 정의한다.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가족을 정의한 기타노 다케시보다 본인의 가족관이 더 건강하다고 말하는 그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의 상식을 벗어난 위험한 발상(?)을 서슴없이 하며 이를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다.

우리는 아이를 갖지 않고 둘이서 잘 살기로 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는 신촌의 비뇨기과에 가서 정관수술을 받았다. 어영부영하다가 결심이 흔들릴 게 두려웠다. 비뇨기과 의사가 “자녀는 몇 분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둘 있습니다”라고 거짓말했다.--- p.15

기어코 정관수술까지 감행하며 기존 가족의 모습을 거부하는 그를 통해 ‘보통의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행로를 돌이켜 보게 된다. 초‧중‧고등학교를 오로지 대학 입시를 위해 공부하고, 대학을 들어간 후 만나게 되는 취업, 공무원 시험을 위해 노량진으로 몰려드는 청년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는 회의감과 지리멸렬함을 느끼며 결혼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청춘을 돈,돈,돈을 위해 바치는 우리들. 작가가 살아가는 방식을 들으면서 ‘이렇게 사는 게 맞는걸까?’ ‘조금은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인생의 작은 전복을 꿈꾸게 한다.    

여성의 사회생활 진출로 인한 맞벌이, 결혼, 가족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기존 세대들이 똑같이 해오던 대로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세대 간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5년 만에 신혼여행>은 그 과도기 속에서 나와 가족, 주변과 합의점을 찾아 나가는 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책이며,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는 공감 또한 불러일으키게 한다. 논픽션을 싫어하며 건강상의 이유로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내가, 대리만족하며 무척 재미있게 읽은 신혼 여행기인 이 책을 추천한다.

제주도서관 사서 진승미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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