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큰 어른' 장시영 회장의 타계
시대의 '큰 어른' 장시영 회장의 타계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3.0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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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참전(參戰) 용사들의 대부, 장시영(張時英) 삼남석유 회장이 지난달 28일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 회장은 6·25전쟁 후 지난 반세기동안 제주사회와 함께 해 온 산 증인이자, 제주경제 발전사의 한 주역이었다는 점에서 새삼 그의 생애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는 투철한 애국(愛國) 정신으로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1950년 여름, 부산에서 잘 나가던 현직 개업의사를 때려치우고 해군(해병)에 자원 입대해 전장에 나갔던 제주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다.

해군(해병) 군의(軍醫) 중위가 된 그는 제주도에서 모병(募兵)된 학도병들을 근간으로 편성된 한국 해병 3, 4기와 함께 전선에 나간다. 그리고 곧바로 최대의 전투인 도솔산 전투와 장단 전투지구에 투입됐다. 제주 젊은이들은 수없이 총탄에 쓰러졌다. 그는 전사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부상당한 제주의 젊은이들을 보살폈다.

전쟁이 끝난 1955년 대위로 예편한 그는 제주도로 귀향했다. 1960년 해병 3, 4기 귀환(歸還) 참전용사들은 함께 돌아오지 못한 해병들의 혼(魂)을 달래고자, 제주시 동문로타리에 해병혼탑을 세운다. 이 해병혼탑을 세운 건립추진위원장이 바로 그다. 살아 돌아온 상이(傷痍) 해병들을 돌보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한국해병대에는 이렇게 빛나는 제주해병대의 역사가 있다. 그가 제주지역 ‘참전용사의 대부’로 불리고, 한국해병대의 명예해병 1호로 추대된 것은 다 그런 이유가 있다.

그는 1969년 삼남석유㈜를 창업해 제주지역의 대표적인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시키면서 지역 경제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 삼남석유 회사에는 그가 제공한 제주해병 3, 4기들의 사무실이 있다.

그는 지역사회에도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제주도의사협회장, 재향군인회 회장, 자유총연맹 제주도회장, 제주도 도정자문위원장, 국제라이온스협회 309-0지구 총재, 고문 등을 재임했다.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고 상도 많이 받았다. 한국 해양문학의 효시라는 장한철의 ‘표해록(漂海錄)’을 입수해 제주박물관에 기증해서 문인들을 놀라게하기도 했다.

시간이 날 때는 제주지역 언론인들에게 정론직필, 민권수호, 성실봉사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숱한 아쉬움 속에 생을 마감했다. 고인이 그립다. 그의 이야기, 그의 모습은 제주사람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는 1932년 애월초등학교를 나와 의대를 거치지 않고 의사시험에 도전해 합격한 수재였다. 그의 도전기와 ‘하면 된다’는 불굴의 정신은 제주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이었다.

그는 20~21세기 파란만장한 제주현대사를 살았던 지성이자, 앎과 삶이 일치한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었다.

빈소에 추모 시민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리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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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도미니꼬 2017-03-01 22:54:47
동네 어른으로 저희를 늘 지켜주시던 회장님.
너무나 많은 일을 하시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천국 낙원에서 편히 쉬시리라 믿습니다.
먼저 떠나신 사모님과 만나 편안한 안식이 되소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