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공이 어디로 올 지를 아는가
누가 공이 어디로 올 지를 아는가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2.05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동서고금을 통해 동물이 자연 재앙을 미리 알고 인간에 경고한 일이 많았다.

2009년 이탈리아 아킬라에서 산란기를 맞은 두꺼비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며칠 후 대지진이 발생해 300여 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을 주목한 독일 막스플랑크 조류학연구소는 이탈리아 에트나 화산에 사는 염소들에게 센서를 붙이고 관찰했다. 2012년 1월 5일 밤 에트나 화산이 폭발했다. 그런데 화산이 터지기 6시간 전, 염소들은 화산폭발의 ‘기미’를 알고 집단으로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동물의 자연재해 예지력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최초의 사례다.

10여 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도 코끼리, 물소, 닭들이 쓰나미가 몰려올 해변을 피해 내륙으로 달아났다.

세상만사도 마찬가지다. 헌정이후 역대 정권이나 재벌의 몰락·쇠락도 예외없이 전조(前兆)가 있었다. 다만, 하찮은 동물들도 아는 그 기미를 모르고 파국을 향해 달렸을 뿐이다.

▲예로부터 한자 문화권에서는 ‘기(幾)’가 갖는 함의(含意)에 주목했다. ‘기’란 기미(幾微), 즉 사물의 미묘한 낌새를 말한다. 세상만사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고, 그 시초의 미미한 조짐이 곧 ‘기’다.  ‘기미’를 안다는 것, 즉 ‘지기(知幾)’는 사물의 동향을 일찍이 판별해서 방지하는 것이다.

주역(周易)은 ‘기미’에 대해 지기기신호(知機其神乎), 즉 “사물의 징조를 보고 재빨리 알아차리는 것은 그야말로 신이라고나 할까.”라고 했다.

공자(孔子)가 주역을 해석한 계사전(繫辭傳)에 보면, ‘지기’를 “신묘한 것”이라며 “군자는 기미를 보면 그날이 가길 기다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의 현대적 의미는, 지도자는 무슨 조짐을 포착하는 즉시 잘못되지 않도록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뜻이다. 또 ‘지기’가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임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탄핵정국에서 정치지도자들이 서로 “네 책임이다” 하는 공방은 민망하다. 특검의 수사로 미미한 낌새 정도가 아니라 확성기로 떠들었다는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어서다.

그런데도 모두가 그 기미를 알아채지 못해 이런 파국을 맞은 게 아닌가. 

▲‘기미’를 안다는 건 무슨 신통력이 아니다. 굳이 말하면 통찰력이나 예지력이다. 늙은 어부가 새벽 바다의 바람결에 풍랑의 냄새를 맡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경지에 도달하면 시세(時勢)를 안다. 시세 파악은 기미를 알아차리는 능력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시세의 흐름은 기미를 파악하면 드러나는 법이다. 그런데 수양이 덜 되면 기미를 읽을 수 없다.

욕심과 편견에 사로잡혀 기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때문이다. 오만, 두려움, 잘난 척,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 등이 얽히고 설 켜서 기미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소박한 마음과 부동심(不動心)의 경지에서는 기미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물들이지 않는 흰 천과 잘라내지 않은 통나무를 뜻하는 ‘소박(素朴)’이란 말의 어원대로 거짓이 없고, 사사로이 원하지 않는 마음에 기미가 깃들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지기’를 지식의 차원을 넘어 심성론·수양론으로 결부시키곤 했다.

▲공자가 계사전에서 ‘지기’를 언급하기 직전의 문장엔 이런 말이 있다.
“덕이 없으나 지위는 높고, 지혜가 없으나 도모하는 것은 크며, 힘이 없으나 맡는 것이 무거우면, 거의 예외 없이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정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제주사회의 각 부문 지도자들 중 이런 경구(警句)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훌륭한 축구선수는 공을 쫓아가는 선수가 아니라 어디로 올지 예상해 미리 그 자리에 가서 기다린다. 이런 ‘지기’를 공간창출 능력이라고 하며 훌륭한 선수는 예외 없이 뛰어난 공간창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옛 지도자가 천문을 보고 계책을 세웠다면 요즘 지도자는 시대의 조류와 민심의 저류를 읽고 한발 앞서 좌표를 제시해나가야 한다.

벚꽃대선 축구장에 나온 관전객들은 보고 있다. 누가 공이 어디로 올지를 알고 미리 그자리에 가서 기다리는가.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