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이여 잘 가시게
2016년이여 잘 가시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2.2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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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

[제주일보] 간다. 어쨌든 간다. 세월이란 흐를 수밖에 없는 법, 야속한 강물처럼 흘러만 간다. 살아 있음에 나도 가고 너도 흘러간다. 예쁜 강아지도, 병아리를 챙기는 암탉도, 새벽을 알리는 수탉도 세월의 얼룩짐을 뒤로 하고 다들 흘러간다.

이 대목에서 박목월의 시를 음미해보자. 제목은 ‘얼룩진 보자기의 네 귀를 접는’이다.

얼룩진 보자기의/네 귀를 접듯/눈물과 뉘우침의 한 해를 챙긴다/과오는 사람이므로/누구나 범할 수 있지만/새벽의/쓰디쓴 참회의 눈물은/누구나 맛볼 수 없다/순결이여/얼룩진 자리마다/깨끗하게 씻어내는/새로운 정신의 희열이여/참으로 뉘우침으로/인간은 인간으로/새롭게 거듭하고/그 정신의 안쪽에 열리는/생기찬 과일로써/오늘의 신성한/여명을 맞이한다/저무는 것은 저물고/마무리해야 할 것은/마무리하게 되는/마지막 여울목에서/우리들의 소망은/오로지 새로운 내일의/무구한 새벽을 맞이하는 일/그리하여/순결한 인간으로서/거듭 태어나서/저 황홀한 광명과/신선한 정결함 속에서/핏줄 가닥가닥마다/팽창한 삶의 기쁨을 누리고/걸어가는 우리들의 발자국마다/사람된 길에/꽃을 피우게 하는 것/그 꿈과/의지와 뉘우침으로 오늘은 얼룩진 보자기의/네 귀를 다정하게 접는다.

그렇다. 이제 2016년의 보자기를 접어야 할 때다.

눈물도 있고 뉘우침도 있지만 그것들을 보자기 안에 넣어 다소곳하게 접어야 할 때다. 사람이 걸어 왔기에, 우리가 부딪치며 살아왔기에, 설령 부질없을 지라도 이제 떠나보내는 마무리 순간이다.

잘못된 우정이든 가슴아픈 사랑이든 2016년이라는 세월의 느낌표를 달아 멀리 보내야 할 순간이다. 박목월의 시에서 보듯 비록 쓰디쓴 참회의 눈물일 지라도 누구나 맛볼 수 없는 순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해마다 이맘때면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곧잘 떠올린다. 술자리에서도 그렇고, 글을 쓰는 사람들도 그렇고, 일기를 쓰는 사람도 그렇다. 올 한 해는 일도 많았고 어려움도 참 많았다. 알파고와 인간의 다툼, 총선, 묻지마 살해, 리우 올림픽, 그리고 최근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시작된 촛불집회, 그리고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 등 큰 일들이 많았다.

어느 해라고 이와 비슷한 일들이 없었겠느냐만 멀어진 세월보다 가까이 있는 역사의 흐름을 더욱 체감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 2016년이라는 아쉬움이 많았던 한 해, 힘들었던 역사의 강물을 바라봐야 할 때이다.

그렇게 그 순간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해야 하는 또 다른 희망의 길 앞에 서 있다.

정유년, 그러니까 닭띠 해가 밝아온다. 닭은 우렁찬 소리로 아침을 깨우는 동물로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동물이다.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새롭게 무엇이 시작됨을 알려주는 신화적인 동물이다. 특히 닭의 울음소리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날이 밝아오는 신호이기도 하다. 닭이 울면 새벽이 오고 동이 트면 나쁜 귀신들이 달아난다. 때문에 해로운 기운을 없애주는 동물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은 내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만사형통이고 축복이 많은 일들이 생긴다고 한다. 우린 그런 희망을 맞이하는 성스러움 앞에 서 있기에 새해가 기다려진다. 비록 2016년의 4계절은 시절이 다해 지나가니 보내긴 하겠지만 내년에도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찾아올 것이다. 다만 고운 얼굴이 검어지면 어찌할까 걱정은 되겠지만 아득한 세월 속으로 부디 잘 가서 우리 인간들이 한 해동안 치열하게 살았다는 것을 남겨주기를 소망해본다. 2016년 잘 가시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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