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에 걸린 달도 돈 내고 보라면
한라산에 걸린 달도 돈 내고 보라면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6.12.1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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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옛날 어느 왕이 학자들을 불러 모아 세상의 모든 지혜를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열두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이 열두 권의 책을 받아 본 왕은 이것은 분명히 세상의 지혜이며 보물이다 그러나 너무 두꺼워 많은 백성들이 못 읽을까 염려되니 더 간략하게 줄이라고 다시 요청했다. 그 후 열두 권의 책은 한 권으로 요약됐다.

왕은 그 책을 보다가 한 권의 책도 너무 많다며 한 페이지로 요약하라고 요청했다. 학자들이 더욱 더 분발해 한 페이지로 줄여졌다. 하지만 왕은 한 페이지의 글도 읽지 못하는 백성이 있을까 염려되니 단 한 마디 말로 압축하라고 마지막 요청을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나온 한마디가 다섯 자 ‘天下莫無料 (천하막무료)’, 즉 ‘세상에는 무료가 없다’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시중에서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을 할 때 곧잘 이 이야기를 한다.

▲우리 국민에게 산(山)은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공짜’다.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가리지 않고 받아주는 곳이 산이다. 국민의 눈에는 산이 공공재다.

하지만 입장료를 받는 산도 있다.

그 입장료는 국립공원 내 사유재산인 사찰과 문화재 보호를 위한 목적이다. 입산료(入山料)라는 개념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내 나라 우리 산’에 내가 가는데 왜 돈을 내야 하느냐는 것이 국민정서다.

그러나 내년 하반기부터 한라산을 구경하려면 1인당 2만원 안팎의 입산료를 내야 할 것 같다. 자연과 환경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여러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입산료가 몇 천원도 아니고 2만원이니까.

우리 국민은 금강산 가면서 입산료로 1인당 100달러(당시 12만원)를 냈다. 나중엔 50달러 이하로 내렸지만, 1998년부터 2008년 관광중단 때까지 북에 지급한 공식 입산료만 5억달러(약 6000억원)나 된다. 그런 사람들인데 한라산이 2만원 받는다고 무슨 일 있겠느냐 할지 모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아야 할 사안이다.

▲만약 한라산 입산료가 내년 시행된다면 소동파(蘇東坡)가 와서 울고 갈 것 같다.

“천지간의 물건은 다 주인이 있어 내 것 아니면 터럭 하나 가질 수 없네. 오직 시원한 강바람과 산 사이 밝은 달은 소리가 되고 색이 되며, (내가) 가져도 막는 사람이 없고 아무리 써도 줄지를 않네. 조물주의 이 무진장한 보물을 그대와 내가 함께 즐겨보세(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豪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取得之而爲聲 目寓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者之所共樂).”

소동파가 황저우(黃州)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지었다는 적벽부(赤壁賦)의 결론이다. 이 세상 모든 물건은 다 소유자가 있지만 산(山)과 강(江) 청풍명월(淸風明月)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누가 더 보거나 더 즐긴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이렇게 ‘공짜’를 주는 신(神)의 손이 있으니 우리가 아등바등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살자는 것이다.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 ‘공짜’가 있다면 이 세상에서 아귀다툼할 이유가 없다.

▲산은 사실 ‘공짜’로 쓸 수 있는 ‘공공재(公共財·public goods)’가 아니다. 나라에서 다양한 공공재 성격의 무료(無料)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사람들이 국가의 자산(국유재산)인 한라산도 공공재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국유재산은 개인적인 사용이 제한돼 있고 필요시 사용료를 납부하고 유상으로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임의로 사용할 경우 변상금 부과와 같은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

국유재산인 한라산 이용은 공짜가 될 수 없다. 한라산 입산료에는 이런 근거가 있는 것 같다.

세상에 ‘공짜’는 줄어들고 있다. 옛날 대갓집 잔치는 거지들의 공짜 잔치이기도 했다. 그런데 공짜가 줄어들수록 인간의 삶은 팍팍해진다. 이웃 간의 정,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 등도 약해진다. 공짜이던 물도 요즘은 사먹고 있다.

이러다간 잔잔한 바다의 해연풍도, 한라산 자락에 걸린 달도, 소리도, 색(色)도, 다 돈 받는 세상이 올 것 같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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