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삼춘들 이야기 끝나지 않았다"
"해녀삼춘들 이야기 끝나지 않았다"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6.11.29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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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영화감독 고희영-영화 '물숨'으로 제주해녀 알리는데 큰 역할
고희영 감독(맨 오른쪽)이 영화 ‘시소(see-saw)’의 첫 상영에 앞서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제주일보=변경혜기자] 영화 ‘물숨’으로 강인한 제주잠녀(해녀)들을 울려버린 고희영 감독(50)을 최근 영화관에서 만났다. 제주에서 펼쳐지는 열흘간의 두 남자 이야기를 담은 또다른 영화 ‘시소(see-saw)’의 첫 상영일이다. 관객과의 대화를 마친 그와 함께 유네스코 등재를 앞둔 제주해녀 이야기와 영화 이야기들을 나눴다.

무려 9년이다. 촬영하는 데만 꼬박 7년. 고희영 감독이 영화 ‘물숨’에 공을 들여 세상에 내놓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의 노력도 더해져 제주해녀(잠녀)문화는 곧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가 확실시되고 있다. 제주사람이면 누구나 가슴 한켠에 심어놓았을, 거친 바다와 동고동락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는 그의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개봉시기까지 일부러 늦춘 그였기에 누구보다 기뻐할 것이란 걸 ‘뻔히’ 예상했지만,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등재를 앞둬 소감부터 물었다.

“‘물숨’은 유네스코 등재 마중물이 되기 위해 만든 영화거든요. 개봉시기도 일부러 늦추면서까지, 그래서 정말 좋죠. 좋아요. 마치 그동안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내 어머니의 가치를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었다는 그런 느낌, 정말 기쁘지요. 그런데 정말 마중물이 됐는지는….”

만면에 웃음을 보여준 고 감독이 잠시 머뭇거렸다. 제작부터 개봉까지 꼬박 9년의 긴숨을 쉬며 달려온 그다.

갑자기 찾아온 암과 싸우며 작품을 만들어야 했고 늘 부족한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영화 ‘물숨’이 만들어지기까지 여정을 담은 책 ‘물숨’(나남)에는 “그런데 거짓말처럼 촬영 때가 되면 제작비가 모아졌다. 투자자로부터 눈먼 돈을 받지 않으니 우리는 더욱 순수해질 수 있었다”고 어려웠던 일들을 에둘러 설명했다.

그는 가난한 영화사 대표가 으레 겪는 일이라고 했지만 ‘이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겠노라’고 매번 다짐했다고 털어놨다. 거기엔 베이징에서 저희들끼리 도시락을 싸서 등교하는 두 아이에 대한 미안함도 늘 함께였다고 했다.

영화에 대해 아쉬움이 없는지를 묻자, 그는 대번에 “흥행은 못했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곧 “관객이 적어서 그렇지만, 해녀 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만족한다”며 “유네스코에 등재되면 감독으로서 ‘얻을 건 다 얻었다’ 생각한다”고 자부했다.

그러면서 그는 “해녀삼춘들이 바다 깊숙이 들어갔다 나오면서 내뿜는, 그 거친 숨이 아직도 생생해요. 유네스코 등재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주해녀들의 진짜 가치를 제주사람들이 ‘마음으로’ 기억하고 눈으로 기념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뼈있는 말을 던졌다.

이날 개봉한 ‘시소’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옮겼다. 어느 날 갑자기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방송인 이동우씨(본명 김동우‧46)와 오직 시력만 살아있어 고운 딸아이의 볼을 매만져주는 게 소원인 임재신씨(44)가 주인공이다. 두 남자가 제주에서 보내는 열흘간의 이야기엔 산굼부리의 억새밭, 법환리 바닷가, 사려니숲 등 제주사람이어서 깊이 공감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물질하는 성산 해녀(잠녀)가 갓 잡아 올린 문어를 데쳐 초장에 찍어먹는 장면은 침이 절로 고인다. 두 남자가 대본도 없이 나눴던 대화는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함께 살기위한 몸부림인 것 같아, 나무들이 기울어져 있는 건.”(사려니숲에서의 대화)

“아이들이 크면서 예쁜 순간들이 너무나 많잖아. 내 딸 볼을 만져주고 싶어. 그 예쁜 순간 순간을 쓰다듬어 주고 싶어.”

고 감독은 “대사를 써줬냐고 똑같은 질문을 계속 받았다. 두 남자가 나눈 대화를 받아 적은 것만 두꺼운 노트 6권인데, 편집이 끝나고서도 정말 귀하고 아까워서 노트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작 ‘물숨’에 이어 ‘시소’의 배경이 왜 제주인지를 물었다.

고 감독은 “뭍에서 나는 걸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바다를 향해 한발 한발 용기를 내며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가 ‘물숨’이라면 자신한테 갑자기 고통이 닥쳤을 때 멈출 것인가, 한발 더 내디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바로 ‘시소’”라며 “우리가 살면서 늘 던지는,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고 물숨을 촬영하며 내내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년 개봉을 앞둬 막바지 촬영 중이라는 ‘불숨’ 이야기를 꺼냈다.

“제주도에 보면 외톨박이처럼 숨어사는 장인들이 많잖아요. 25년 전 알게 된 우리나라 마지막 도자기 장인, 도공 이야기예요. 25년이 흘러서 우연히 다시 만났는데 막사발을 만들고 계셨죠. ‘이제 마음에 드는 그릇을 빚으셨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여전히 ‘아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것에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끌어올려서 불태우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고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훗날 우도에 작은 다큐멘터리 영화관을 만들어 해녀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한마디. “아직 해녀삼춘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고희영 감독은…1966년생으로 제주시 용담3동 수근동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중앙여고와 제주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일간지 사회부 기자를 하다가 MBC 작가와 SBS 시사다큐 ‘그것이 알고 싶다’·‘뉴스추적’ 작가, KBS ‘수요기획’·‘KBS스페셜’ 등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100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2004년 중국 베이징으로 터전을 옮겨 영화사 ‘숨비’를 열고 본격적인 다큐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베이징과 우도를 오가며 6년, 후반작업까지 꼬박 9년의 대장정을 거쳐 제주잠녀(해녀)를 온전히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 ‘물숨’은 지난 5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 등 2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또 제1회 런던아시아영화제, 제11회 런던한국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제주해녀를 알려내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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