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붕괴시킨 대통령
상식을 붕괴시킨 대통령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6.11.2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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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신정익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만든 대한민국의 살풍경이 세밑을 향해 가는 국민들의 가슴을 후벼 판다.

상식을 완전 무너뜨린 국정의 혼란 때문이다. 이전에 알던 세상의 보편적 가치를 쓸모없게 만들어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만든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에 와서 보면 대통령에게 애초부터 국민이나 국격(國格)은 안중에 없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헌정 사상 처음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가 된 사실을 반성하고 응분의 책임을 다할 생각보다는 국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정치적 생명연장을 위한 놀음을 하고 있다.

지난 20일 검찰은 박 대통령을 최순실‧안종범‧정호성과 함께 ‘공동정범’이라고 지칭했다. 국정농단과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모금 및 청와대 문건 유출의 공범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박 대통령의 혐의들은 국민들로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측근들의 범죄에 주범역할을 했다는 뉘앙스다.

일국의 대통령이 벌인 행태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믿기 어렵다.

대통령은 언론의 집요한 추적으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사실로 드러나자 첫 사과를 했다. 언론보도에 대해 진솔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 회견을 열었다고 했지만, 회견문 어디에도 진솔함은 들어있지 않았다.

국정농단이라는 엄중한 범죄행위를 지극히 사적인 인연이 만들어낸 실수 정도로 치부했다. 현실인식의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미르-K스포츠재단과 이어진 거악(巨惡)이 드러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대통령은 지난 4일 다시 국민들 앞에 섰다. 모두 자신의 잘못이고 불찰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책임을 인정하는 듯 했다.

검찰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특별검사제도 수용하겠다고 한껏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백척간두로 내몰리자 어쩔 수 없어 고개는 숙였다. 그런데 대통령의 낮은 자세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최순실에 이어 안종범과 정호성까지 줄줄이 구속되고 검찰의 칼날보다 더 준엄한 국민들의 지탄이 하늘을 찌르면서 더는 물러설 곳이 없게 되자 다시 예전의 대통령으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검찰 수사를 너무 당당하게 거부했다. 국민들이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사상 최저인 5%가 한 달째 이어져도 안하무인인 ‘박 대통령’으로 환원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서는 청와대 대변인과 변호인을 통해 ‘인격살인’이니 ‘사상누각’이니 하면서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의 끝을 드러냈다.

행정부의 수반이면서 자신이 통할하는 행정부에 속한 기관인 검찰을 대놓고 부정했다.

한 발 더 나가 ‘중립적인’ 특검의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한다. 특검에게 중립적이라는 전제조건을 붙였다.

중대한 범죄혐의가 있는 피의자가 수사 주체의 자격을 운운하는 꼴이다. 특검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마치 수사 지휘자라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 범죄를 저질렀다면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죄의 유형에 따라 단죄의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이 정도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상식이다. 상식을 붕괴시킨 대통령이 꼭 챙겨야 할 대목이다.

조선 영조 때 역관 출신 시인인 이언진은 거지와 도둑에게도 염치와 인지(仁智)가 있다고 일갈했다. ‘꾸짖으며 주는 음식은 받지 않고, 밟아서 주면 안 먹으니(呼不受蹴不食)/어찌 거지에게 염치가 없다고 하랴(丐子豈無廉恥)/마땅히 취할 만한 방법으로 취하고 고르게 나누니(取必宜分必均)/도둑에게도 어짊과 슬기로움이 있네(偸兒亦有仁智)’.

그의 문집 ‘송목관신여고(松穆館燼餘稿)’에 실린 글이다.

대통령에게는 어떤 상식과 염치가 있을까.

오는 26일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타오를 횃불 같은 촛불도 상식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부활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여망이다. 다시 ‘엄중하게 인식한다’는 정도의 판에 박힌 소감을 내놔선 안되는 까닭이다.

신정익 기자  chejugod@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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