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이후 편견과 차별을 단상하다
트럼프 당선 이후 편견과 차별을 단상하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11.22 1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형구. 미국 앨라배마대학교 커뮤니케이션정보대 부교수

[제주일보] 초등학교 교정에 가을볕이 나지막하다. 미풍이 실려 고즈넉한 오후다.

정치뉴스에 거리 둔 시간은 참 맑다. 거리낌 없이 웃고 말이 거침없는 여섯 살 남짓 아이들의 천진난만에는 트럼프도 없고 힐러리도 없다.

피부색이 제각각인 아이들이 어우러져 뛰노는 모습은 신명이고 평화다.

위안과 희망은 잠시. 두 세 걸음 뒤로 장면을 옮겨 보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경계와 곤두선 눈매가 차갑다. 아이의 부모들이다. 메마른 인사로 어색하다.

“One cannot not communicate.”(누구도 소통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표정과 손짓으로 느낌으로 전해 온다. “우린 달라.”

예기치 않게 미국 남부를 실감하는 일이 가끔씩 있다.

하루는 싸 준 김밥 도시락을 아이가 고스란히 남기고 왔다.

이유를 물었더니 김밥 냄새가 고약하다고 친구들이 놀려서 그랬단다. ‘김밥천국’ 한국에선 보기 힘든 씁쓸함이었다.

백인 친구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서럽게 울어버린 아이도 있다. 동료 한국 교수의 전언이다.

‘Go back to your country’(너의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까르르한 외침이 학교버스 창을 넘어와 귓등을 두드렸다.

싸늘하게 주눅 든 마음을 다독인 기억이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인종 편견과 차별 이슈가 민감하다. 미국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트럼프의 언어와 공약에서 편견과 차별의 낌새는 농후하다.

신나치주의 단체와 KKK 같은 백인우월주의 그룹은 드러내 놓고 트럼프 당선 축하 행진을 공언한다.

다양한 법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까지 배출한 미국이지만 편견과 차별은 ‘도도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문화와 사회 경험 속에서 숙성된 생각, 태도, 행동은 쉬이 바뀔 수 없다.

편견과 차별에 대한 담론은 사회심리학에서 오랫동안 연구돼 왔다.

고정관념(stereotype)의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 편견(prejudice)이고 편견이 행동으로 옮겨지면 차별(discrimination)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치우침이 없이 판단하고 차별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대부분 믿고 있지만, 심리테스트를 거쳐 보면 잠재의식에 내재돼 있는 편견과 차별의 성향은 확연히 드러난다고 연구결과(Cutler, 2009)는 말하고 있다.

자각하지 못하는 편견과 차별이 훨씬 더 파괴적일 수 있다고 학자들은 경고한다.

당대와 역사의 민족 갈등, 인종 청소, 전쟁, 테러 등의 그 예다.

편견과 차별이 생각과 태도, 행동에서 우러나오듯 극복도 사람의 몫이다.

달라이 라마는 소통하라 한다.

낯익은 화두다. 남의 가치를 이해하고 대화하며 의견을 나누려는 열린 마음이다.

사람을 온전하게 알고자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디아시의 결혼은 소통으로 서로의 가치에 이해를 구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며 편견을 극복하는 과정을 탄탄하게 그려주고 있다.

얹혀진 ‘간판’과 ‘계급장’ 떼고 ‘민증 까는’ 일 없이 상대를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개인으로 본바탕을 인식하고자 하면 다름은 줄어들고 같음은 외려 선명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