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의 산책
초겨울의 산책
  • 제주일보
  • 승인 2016.11.1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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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 수필가 / 제주동서문학회장

들녘을 일깨우는 산바람이 제법 싸늘하다. 한라산 서쪽 한대오름 가는 길에도 겨울의 한기가 더욱 옷깃을 차갑게 한다.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면서 숨이 차서 헉헉거리지만 들녘에 하얀 눈이 내릴 생각에 어느새 마음은 급해진다.

눈 속에 피어날 이름 모를 꽃들이 움을 트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연 앞에 숙연해지는 것은 자연이 주는 겸손함 때문일 것이다. 봄철에 움과 싹이 새로 돋는 것은 사실 봄의 공로가 아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 가지와 뿌리를 건사해 온 겨울의 기나긴 산고(産苦)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겨울의 공은 잊을 채 봄만 찬양한다.

눈 속에 피어날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 봤다. 이들은 시들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만 맞이하면 활기를 돋는다. 이 땅에서 자연의 생명을 만들어 주는 데서 제주의 색다른 매력과 가치는 숨겨 온 꾸미지 않은 속살들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자연 그대로의 생명력은 계절과 날씨에 다라 시시각각으로 숨을 쉬면서 살아간다.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한참을 오르니 정상을 향한 종점에 섰다. 초겨울 산의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오름의 크기와 갈대 등 다양한 색색의 물결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초겨울 산과 들녘의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다. 정상에서 일행이 갖고 온 좋은 물로 따뜻한 커피를 나눠 마시는 맛은 무엇으로 비교하랴.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사방을 조망하니 한라산의 모습과 주변에 있는 오름 군락들이 정말 장관이고 다르게 보인다. 동쪽 기슭의 큰노리오름과 족은삼형제 봉우리도 초겨울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한대오름의 유래를 보면 한라산과 연관을 갖고 있다. 즉 한라산은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이라면 큰 은하수·은하수 산으로 해석되는 이 오름은 그 모양새가 해안에서 보면 높고 커서 한대악(漢大岳·漢垈岳)으로 불러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연도 자연이지만 겨울이면 찾아오는 아픔이 있다. 서민들의 삶이다.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가는 주부들과 노동자들도 치솟는 물가 때문에 살맛이 나질 않는다. 서민경제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피폐해져가는 서민경제는 어디에다 하소연하랴.

정부나 국회의원들은 민생을 꼼꼼히 챙기기는커녕 최순실 파동의 볼모로 정쟁만 일삼고 있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겨우 깨닫는 식이다. 하루빨리 정쟁을 멈추고 서민들이 밝은 웃음으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정책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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