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목의 남자(南子)를 만나도
아랫목의 남자(南子)를 만나도
  • 제주일보
  • 승인 2016.11.0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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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봇물이 터졌다. 실세 이야기다. 그래서 권력은 허망하다. 논어(論語) 팔일(八佾) 편에서는 위나라의 현명한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인 왕손가(王孫賈)가 공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랫목에 아첨하는 것보다는 부뚜막에 아첨하는 것이 편하다 하니, 왜 그럴까요?” 당시 위(衛)나라는 어리석은 군주 영공(靈公)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망하지 않는 것은 외교를 잘 하는 중숙어, 내치를 잘 하는 축타, 군사를 잘 다스리는 왕손가 덕분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 왕손가가 공자에게 영공과 그의 부인인 남자(南子)를 아랫목, 그리고 자신을 부뚜막에 비유하여 말했다는 것은 놀랍다. 스스로를 이른바 ‘실세’라고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왕손가의 말을 분명히 알아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데가 없습니다.” 논어 위령공(衛靈公) 편에 따르면 공자는 영공이 진을 치는 법(陳法)을 묻자, “제사 지내는 일(俎豆之事)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 일이 있습니다만, 전쟁 치르는 일(軍旅)에 대해서는 아직 배운 바가 없습니다”하고 다음 날 위나라를 떠나버렸다. 이때가 B.C. 493년으로 위나라에 세 번째 방문했을 때이다. 공자는 어리석은 군주와 그 곁에서 국정을 농단하는 신하들에게 아첨하여 이익을 꾀하는 일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백성에게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공자의 이런 태도는 논어 옹야(雍也) 편에서 위령공의 부인 남자(南子)를 만난 일을 두고 힐난하는 자로에게 한 맹세(矢)에서 드러난다. “내가 부정을 저질렀다면 하늘이 싫어할 것이다. 하늘이 싫어할 것이다.(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B.C. 497년에 위나라에 처음 방문한 공자는 자로의 처형인 안탁추(顔濁鄒)의 집에 머물렀다. 이때 위나라 영공(衛靈公)에게 노나라와 같은 대우를 받았지만 참소하는 일을 겪고 열 달 만에 위나라를 떠났다. 진나라로 향하던 공자는 그를 노나라 계씨의 가신이던 양호(陽虎; 陽貨)로 착각한 광(匡) 사람들에게 5일간 억류되었다가 다시 위나라로 돌아와 대부인 거백옥(蘧伯玉)의 집에 머물렀다.

공자가 ‘남자’를 만난 것은 이 때의 일(B.C. 496년)이다. ‘남자’는 이복오빠인 송조(宋朝)와 사통하면서 혼군(昏君)인 위령공을 조정, 정치에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태자 괴외(蒯聵)가 아버지 위령공 사후에 어머니 ‘남자’를 살해하려고 하다가 실패하여 국외로 달아났다는 사실로도 그 위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남자’가 갈포(葛布)로 만든 발 안쪽에 있었다. 공자가 문으로 들어와 북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자 부인은 발 안에서 재배(再拜)로 맞았다. 그러자 공자는 “우리 고향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보지 않지만 만나는 예로 답을 합니다”라고 말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이 일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자로는 이 일을 꺼림칙하게(不說) 생각한다. 풍채가 닮은 양호가 만나러 왔을 때도 공자는 그를 만나려 하지 않았는데, 굳이 ‘남자’를 만나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공자도 자로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함부로 나서지 말라(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논어 자로)’고 자주 꾸짖던 자로에게 맹세까지 한다. 상황이 다급해서가 아니다. 사실 공자가 ‘남자’를 만난 이유는 그가 따뜻한 아랫목의 실세여서가 아니라, 사마천이 그려냈듯 그렇게 만나는 것이 예(禮)였기 때문이다.

아랫목의 ‘남자’를 만나도 욕을 먹지 않고, 백성에게 죄인이 되지 않는 방법은 ‘예(禮)’로 만나 마주하고, 물러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위령공 편에서는 군자(君子)를 “의로움을 바탕으로 삼아 예(禮)로 행하며, 낮춤(孫)으로 드러내고, 믿음(信)으로 이뤄내니 군자라고 할만하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두고 정약용은 예로 행한다는 것을 위행(危行), 곧 행동을 준엄하게 하는 것으로 해석했고, 낮춰 드러내는 것을 말(言), 믿음으로 이뤄내는 것을 행동(行)이라고 했다. 의로움과 믿음이 시작과 끝이 되고, 말과 행동은 신의(信義)의 두 날개라고 본 것이다. 난파선에서 구사일생하느라 경황이 없겠지만, ‘신의’란 본래 이런 것이니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으면 좋겠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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