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만 더 뒤로
한 발짝만 더 뒤로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10.1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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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한 발짝 뒤로... 노란 발자국 그린 횡단보도 ‘사고 0’

두 달 전쯤이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인근 왕복 4차선 도로 횡단보도 앞에 그려진 ‘노란 발자국’위에 약속이나 한 듯 초등학생들이 나란히 발을 맞춰 선 채 녹색신호를 기다렸다. 이 모습이 일제히 언론에 보도됐다.

이른바 ‘넛지(Nudge)효과’를 활용한 아이디어서 창안돼 나온 이 노란발자국은 횡단보도에서 50cm~1m 정도 떨어진, 기존 인도경계선에서 한 발짝 뒤에 만들어진 일종의 신호 대기선이다. 기존 차도에 바짝 붙어 신호를 기다리던 학생들이 한 발짝 뒤에 발을 맞췄다.

자연스레 횡단보도에 진입하려면 양쪽 차량을 살피게 됐고, 그 결과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가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경기 남부지역에만 이 처럼 ‘한 발짝 뒤’에 만들어진 노란발자국이 2000개가 넘는다. 제주에도 언젠간 이 ‘한 발짝 뒤’ 노란 발자국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처럼 ‘한 발짝 뒤’는 아주 쉬울 수 있지만, 현실에선 ‘한 발짝 뒤’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제주가 다름 아닌 이 ‘할 발짝’ 문제로 내홍에 휩싸였다. 한 발짝 더 나아가자, 한 발짝 더 뒤로 가자.

이 둘이 충돌한 결과다.

 

#충청도 의원이 본 제주문제

“기존 수용범위를 초과한 관광객 급증과 함께 급속한 개발수요는 ‘섬’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환경파괴·훼손 등으로 온갖 부작용을 발생시켰다” “청정과 공존 핵심가치를 반영한 환경 친화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

얼핏 보면 제주도의회 의원이 제주를 걱정하는 ‘충정’에서 한 말처럼 들린다. 아니면 시민사회단체 성명서의 한 구절로 인식 될 수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이명수 의원이 이달 8일 제주도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와 관련, 급증하는 관광객과 난개발로 인한 ‘제주의 문제’를 지적한 말이다.

이 국회의원은 충남 아산시가 지역구다. 그런 그가 ‘제주의 문제’를 일갈했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봤다. 제주도민들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을 감수해야 했다.

제주도의회는 입만 열면 넘치는 쓰레기, 고장 난 하수처리장, 교통문제 등에 대해 집행부인 제주도정을 질타하는데 혈안이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개발을 요구하고, 심지어 겁박한다.

현 문제의 일차적 책임은 제주도정에 있다. 과거 도정이 저질러 놓은 일이라고 둘러대면 할 말 없지만, 그렇더라도 제주도정은 어느 순간 단절되는 게 아니다. 결국 현재의 문제는 현 제주도정이 풀어야 한다.

그렇다고 제주도의회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제주도정을 똑바로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게 제주도의회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제주, 제주의 그늘 간과

빛이 강할수록 그 밑의 어둠 또한 강한 게 세상의 이치다. 이는 제주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이른바 ‘금수저’로 상징되는 강한 빛의 사람들이 ‘주류’를 자청하고 이 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돈이 정의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 빛의 아래에는 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국가와 역사가 근본적인 정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유전무죄의 내부자들을 위한 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빈부격차와 인간성 훼손, 파괴되는 가정과 루저들의 어두운 삶이 하루가 다르게 사회를 억누르고 있다. 강한 빛 아래에 짙은 어두움이 깔려 있다.

제주가 꼭 이 모양이다. 돈으로 상징되는 ‘업자’가 제주의 주류가 됐다. 자본을 거머쥐고 있는 제주의 주류는 오로지 눈 앞 이득에 눈이 멀어 돈 될 만한 곳은 죄다 헤집었다.

엄밀히 제주는 지금 한라산국립공원지역을 제외하곤 성한 곳이 없다. 그나마 한라산국립공원지역을 중앙정부가 관리했기에 망정이지, 지방정부가 관리했다면 이곳도 벌써 쑥대밭이 되고도 남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 제주사회는 제주에 너무 가까이 있어 제주의 그늘을 간과하고 있다. 충청도 출신 국회의원도 보는 제주의 문제를 당사자인 제주사람들이 보지 못한다면 이는 분명 제주의 낯부끄러움이다.

개발과 개방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게 아니라, 이들에서 한 발짝 물러나 제주를 바로 봐야한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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