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해녀 숨비소리
우도 해녀 숨비소리
  • 제주일보
  • 승인 2016.10.1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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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

어렸을 때 할머니, 어머니, 이웃집 아줌마, 공통된 울부짖음, 그런 목소리가 있었다. 갈매기와 함께. 그리고 돌고래의 헤엄치는 춤사레도 있다.

최근에 우도에서 찍은 7년간의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 참으로 역작이었다. 누가 그런 일을 생각하겠는가. 예술정신이 없으면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살기 위해 숨을 멈춰야만 하는 여인들이 있다. 온종일 숨을 참은 댓가는 이승의 밥이 되고, 남편의 술이 되고, 자식들의 공책과 연필이 되었다’. 영화 ‘물숨’의 내용이다. ‘물숨’은 지난 9월29일 전국의 영화관 71곳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를 만들어낸 고희영(50) 감독은 왜 7년을 기다리면서 ‘물숨’을 만들었을까. 일단 얘기는 이렇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에서부터 지난해 방영된 ‘힐러’까지 수많은 히트작을 만든 작가 송지나와 재일교포 2세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이자 뉴에이지 음악 작곡가인 음악인 양방언이 이 영화에 힘을 합쳤다. 양방언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공연 음악감독으로 명성을 알렸다.

“이 영화를 보고 뜨거운 무언가가 내 안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며 예고편 내레이션에 참여해 ‘물숨’을 응원하고 있는 배우 채시라와 ‘행복을 그리는 작가’로 알려진 스페인 출신의 에바 알머슨(Eva Armisen)도 이 영화제작에 힘을 보탰다. 에바는 우리나라 여러 기업과 협업해, 대중들에게도 그녀의 그림은 익숙하다.

무슨 조화(造化)이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인들이 이 영화에 함께한 걸까? 다시 인터뷰한 자료를 들춰본다.

“송지나 작가는 제 멘토예요.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의 선배작가이기도 하죠. 송 작가는 고등학교까지 제주에서 자라 제주도 정서를 잘 알 것 같기도 했고요. 2008년 6월에 영화작업을 시작했고, 2009년에 송 작가를 찾아갔어요. ‘해녀’ 관련 영화를 만들려하고 5년 정도 걸리는데 작가로 함께 참여해 달라고요.”

송 작가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약속한 5년을 훌쩍 넘어 7년의 촬영과 후반 작업 2년까지,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약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열연한 배우 채시라도 송 작가와 인연으로 ‘물숨’ 예고편 작업에 함께 했다.

“제 영화는 음악이 중요해요. 어느 날 양방언씨 음악을 듣는데 음악에서 바람소리가 들려 소름이 끼쳤어요. 아버지 고향이 제주라던데 그의 유전자에도 제주가 담겨 있나 봅니다.”

고 감독은 서울 종로에 있는 양씨의 소속사를 찾아갔다. 그때가 소치 동계올림픽 음악감독으로 활동할 때라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 감독은 ‘7년간 영화촬영을 했는데 10년이 걸려도 좋으니 기다리겠다’고 했다. 소속사 관계자는 어이없어 했고, 이 얘기를 전해들은 양씨는 고 감독을 찾아와 영화를 보고 함께 하겠다고 했다.

에바 알머슨이 ‘물숨’에 관심 있어 한다는 얘기를 들은 고 감독은 개봉 전에 영화를 보여줬고, 에바는 이메일로 ‘영화가 감동적이다. 도와주고 싶다’라는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세계적인 예술가의 호의에 고 감독은 한국의 해녀를 알리고 싶어 에바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비매품으로 만든 기념품 몇 가지에 에바한테서 받은 해녀 그림을 넣은 것이다. 에바의 그림이 행복을 전해준다는 느낌을 받은 고 감독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읽힐 수 있는 해녀 동화책을 만들자고 에바에게 제안했다. 에바의 동의로 ‘물숨’을 동화책으로도 조만간 만날 수 있다.

고 감독과 함께한 이들은 모두 재능기부로 참여해 영화의 의미를 더 살렸다. ‘수평선’이 싫어 떠난 제주에서 삶의 진실을 찾는 것을 그렸다. 어쨌건 역사적으로 1937년 우도 해녀가 중심이 된 일제 항쟁운동은 300여 명에서 1만7000명으로 번져 나갔고 그들의 삶과 인간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그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닮아갈까.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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