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잃어버리는 정책, 환상에서 벗어나야"
"제주를 잃어버리는 정책, 환상에서 벗어나야"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6.10.03 1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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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1주년 특별 릴레이 인터뷰·대담…<3>고은 시인
고은 시인이 제주일보와의 깊은 인연등 제주에서 살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있다.

[제주일보=변경혜 기자] “나와 친했던 제주신문, 제주일보를 만나서 반갑네. 나는 저 60년대부터 이 신문의 1세대 사람들을 거의 다 알고 있지. 그때 주필은 김용수, 편집국장은 고정일이었어. 그 다음에는, 그 동생인 고영일도 있는데 다들 매우 총명한 언론인들이었지. 나중에는 피난 와서 제주에서 결혼한 소설가 최현식이 있었는데, 그도 이 신문사의 편집국장이었어. 전격적인 인사여서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지. 그때 주저주저하던 그의 옆에서 힘을 보태주려고 편집국장 옆자리에 앉아주기도 했어. 바른 집필을 하라고 만년필을 사주기도 했지.”

50년도 더 전이다. 목포에서 ‘황영호’를 타고 제주바다를 건너기 전, 생을 마감하려 기회를 엿보다 실기해 이른 새벽 산지포 앞바다 달빛에 숨죽인 제주를 품게 된 오래전 그날이 고은 시인(83)에게는 어제였다. 별도봉 아래 제주잠녀(해녀)들과 불턱에서 나눴던 이야기와 기세좋은 거대한 파도가 절벽에 사정없이 부딪친 다음 사라져버리면 폐부 깊숙이 충동이 밀려왔다. 그 거침없이 쳐대는 파도의 생명력은 파동으로 이어져 시인에게 특유의 우주적 상상력을 만들어줬다. 시인은 수십년 자신을 이끌었던 시론의 고향은 제주 별도봉 벼랑이라고 말했다.

제주일보 창간 71주년을 맞아 ‘제주미래를 논하다’라는 주제로 만난 대시인에게 이야기의 범주는 의미가 없었다. 시인 구상, 박목월, 양중해, 영원한 ‘오름나그네’ 고(故) 김종철, 최현식과 현평효, 김영돈, 진성호, 양병윤 등 제주와 육지를 잇는 이야기는 날줄과 씨줄처럼 촘촘하다.

제주에서 보낸 시간, 화북에 금강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해 교장과 미술‧국어교사로 1인 3역을 했던 이야기에 노 시인은 아이마냥 해맑다. 50여 명의 학생들, 수업료는 없었다.

‘가짜 고은 시인’ 이야기가 나왔다. 그 무렵 제주에는 가짜 고은 시인이 떡하니 결혼까지 했다가 들통이 났다. 유명인사를 사칭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유독 고은 시인의 경우가 많았다. 충남에서도, 경주에서도, 서울에서도.

“죽을 기회를 놓쳐버려 제주에 도착해 영주하러 왔다고 했는데, 제주일보에 ‘진짜가 왔다’고 기사가 실렸어. 또 술을 마셨지. 훨씬 뒤 서울에서 가짜 고은을 직접 만나기도 했어. 그런 일은 텔레비전 시대가 오면서 사라졌어.”

고은 시인의 에피소드가 어디 이뿐이랴. “1970년대에 산문집 ‘제주도’가 나오자 제주신문(현 제주일보) 김선희 사장이 당시 제주 유일의 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크게 해줬어. 제주의 유명인사들 다 불렀지. 2층집을 지어줄 테니 일주일에 한 번씩 칼럼을 써달라고 했지. 그러나 그 후 다시 올 수 없었어. 또 하나 생각나는 일이 있는데, 32살 즈음 내가 칠성통에서 매일 술만 먹을 때였어. 죽음만 생각했으니까. 그때 한 인사가 날 찾아와서 ‘너 아깝다. 술만 마시지 말고 큰 문학을 해라. 성판악 인근 8만평을 주겠다. 초가삼간도 지어주겠다’며 술 대신 글을 쓰라고 했어. 그땐 그런 걸 받으면 모독당하는 기분이어서 거절했어.”

당시 정우식 제주도지사가 관사에 고은시인을 위한 홈바를 만들었던 일이며, 일화가 끝이 없다. 그러다 노 시인의 표정이 바뀌었다.

“제주바다, 제주인문 여러 가지를 썼는데, 4·3을 못썼어. 내가 칠성통에서 식물학자 부종휴한테 4·3을 취재했어. 누군가가 그 얘기를 들었겠지. 그 중에 방첩대장이 있었던 거야. 그 당시 제주4·3을 취재한다는 건 큰 모험이기도 했어. 하루는 방첩대장이 술집으로 찾아왔어. ‘고명하신 시인님’이라고 하니까 내 시를 좋아하는 독자인줄로만 알았지. 2차까지 거나하게 술대접을 받고 3차를 가는데, 서부두 끝까지 데리고 가더니 갑자기 말을 바꾸는 거야. ‘너 이 새끼, 4·3 취재한다며, 너 한 대 치면 여기서 죽어. 물에 빠지면 아무도 몰라. 네가 빨갱이를 취재해?’”

노 시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방첩대장이니까 덩치도 컸어. 나는 술이 확 깼어. 다시는 4·3을 건들지 못했어. ‘제주도’라는 책에서도 4·3을 빼야 했어. 뒷날 현기영이 ‘순이삼촌’을 발표할 때도 곤욕이 컸지.”

시인은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1970‧198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통일운동하며 감옥에 여러번 들어간 한국시문학의 거목의 얼굴을 마주할 뿐이다.

“제주도는 이제 다른 섬이야. 그런데도 내가 제주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 제주어야. 제주어는 지역어가 아니야. ‘을라’는 북방어야. 고구려, 신라, 백제어가 다 있어. 육지는 변했지만 여긴 그것이 보존된 거야. 이건 우리 언어의 보배야!”

‘국어사전’을 통째로 읽고 또 읽어 고유어와 한자어 구분 없이 한국어 어휘 전체를 공부한 고은 시인의 한국어 연구는 몇 해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영어가 오면서 우리 국어도 깨지고, 국어가 깨지면서 지층의 고대어도 깨지는 거야. 우리가 살아온 혼의 과정이 빠르게 해체되는 거야. 큰 걱정이지. 언어는 다른 언어와 동행할 수 있는 힘을 잃지 말아야 해. 처음 가서 제주사람들의 이야기를 못 알아들을 땐 싫어했는데 살면서 들으니까 다 들렸어, 나중엔 제주도사람들이 나한테 ‘육지것들’ 하고 욕하기도 했어. 내가 육지것인 줄도 모르고.”

고은 시인은 대안으로 제주대학교에 학부과정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주에서 키워야지. 전문적으로 탐라어와 관련된 특수학사과정을 만들어야 해. 지금 제주는 제주를 잃어버리는 쪽으로 가고 있잖아. 세계를 담으려고, 글로벌 환상으로만 가고 있어. 글로벌은 아주 신중하게 다가가야 해.”

그러면서 시인은 남북겨레어말사전이 내년이나 내후년에 나온다는 얘기도 전했다. 남북의 체제어는 빼고 우리말만 담는다고 한다.

이탈리아 카 포스카리 대학 명예펠로이기도 한 그는 베니스의 상황도 전했다.

“제주도에 중국자본이 많이 들어왔는데, 베니스도 이미 주요 바닷가를 중국이 다 차지했다고 해. 이탈리아 브랜드의 세공품이 중국에서 만들어져 베니스로 오고 있는 형편이지. 베니스 사람들도 베네치아는 중국에 점령당했다는 말을 자주 해.”

대안을 물었다. “제주도는 당장 드러나는 수익을 공적(功績)으로 아는 것 같은데, 하지만 더 가야지. 물론 역사라는 것은 변하지. 고대 탐라에서 우리가 어찌 살까?”

제주의 파도소리로 잠을 깨고, 파도소리에 잠들었다는 시인. 제주 생활 이후 고은의 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그의 제주 사랑, 시는 죽지 않고 사람의 세포에 들어가 영혼과 함께 동행한다는 그는 자신의 세포에도 제주가 들어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고은 시인은…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본명 고은태. 1952년 승려가 된 후 1958년 등단했다. 첫 시집 ‘피안감성’(1960년) 발표 후 1962년 환속, 절망과 고통과 광란의 삶을 살며 1964년부터 1967년 제주에서 지냈다. 시집 ‘해변의 운문집’, ‘제주가집’, 산문집 ‘제주도’가 제주의 소산이다.

제주에서 금강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해 국어와 미술을 가르쳤고 오현고등학교에서 학생불교를 잠시 가르치기도 했다. 1970년대에 들면서 암울한 독재시대에 맞서 부단한 투쟁의 시간을 보냈다. ‘조국의별’(1984년), 2010년 완간한 30권 4001편의 연작시 ‘만인보’, 가장 가까운 문학 동지인 아내를 위한 ‘상화시편’(2011년) 등 시‧소설‧수필‧평론 등 작품집이 160권에 이르며 고은시전집과 고은전집 등 작품집이 방대하다.

최근 김소월의 시 ‘초혼’ 일부를 인용해 제주 4·3부터 세월호 참사까지 한반도 곳곳의 아픔을 담은 시집 ‘초혼(招魂)’을 출간했다.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초빙교수, 버클리대 객원교수, 서울대 초빙교수, 이탈리아 카 포스카리 대학 명예펠로 등을 역임했다. 현재 단국대 석좌교수.

전세계 25개 이상의 언어로 70여 권의 시집 출간해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예술원상, 만해대상, 스웨덴 시카다상 등 국내·외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0년 민족문학작가회 의장, 한국민예총 초대 의장 역임.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이다.

서울=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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