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속 조개의 마음으로 추석을
모래 속 조개의 마음으로 추석을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09.1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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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하 수필가

[제주일보] 한여름 기승부리던 폭염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나자 추석 명절이다.

아내는 벌써 명절 지내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제수 비용은 그렇더라도 제물 준비를 혼자 해야 하는 부담이 더 크다고 한다. 며늘아기는 심한 입덧으로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고, 이래저래 걱정인 모양이다.

큰 도움이 안 되는 나는 실긋거리며 눈치만 볼 뿐, 괜한 소리를 했다가는 시집 사람들은 어쩌고저쩌고, 당장 화풀이가 돌아올까 두렵다.

한국의 명절은 농사 절기에 따라 그 의미를 기념하면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놀이를 즐겼던 날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한식, 단오, 칠석, 백중은 사라지고, 이제는 설날과 추석만이 남아 있다. 그만큼 사회의 흐름은 농경생활의 동질성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농경생활에서 가족들과의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바쁜 농사일을 서로 나눈다는 의미가 작용했던 과거와는 크게 다르다. 가족 구성원들의 직업이 다양하고 거주지가 복잡해졌다. 그에 따라 삶의 형태가 다른 환경에서 오늘날 명절의 의미는 사뭇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만남이 없었던 가족들이 한 곳으로의 회귀와 안녕을 묻고 우애를 다지다가 각자의 주거지로 돌아가는 시간일 뿐이다.

가족들과의 만남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그런데도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남이 단순하지는 않다.

차려야 할 음식 장만은 늘 며느리들이 맡아 하는 고역이며 멀리서 온 가족들과의 대화가 항상 즐겁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만남이 적었던 동서들과의 소통이 부족함에서 나타나는 스트레스는 쉽게 풀리질 않는다.

명절 증후군이다. 명절 스트레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들을 보면 여성이 남성들보다 3배 이상 높다. 평소보다 강도 높은 가사노동을 하느라 심리적, 신체적 피로를 경험한다고 한다.

가장 많이 받는 스트레스는 차례 상 음식준비, 제수 비용 부담, 친척들과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반가워야 할 가족들과의 만남은 한 해 묵은 감정 대립으로 불편해지고, 가족들과의 대화에서도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집안 며느리들의 명절에 대한 고충을 이해될 만한 대목이다. 그래도 조상을 잘 섬겨야 복을 받는다는 아내의 말은 스스로의 위안으로 삼는 말인가 보다.

명절 가족 및 친지와의 대화 중 가장 듣기 싫은 말들이 있다고 한다. ‘직장은 다니니’, ‘연봉은 얼마니’, ‘모아둔 돈을 얼마나 되니’, ‘결혼은 언제 하니’, ‘자녀들이 공부는 잘하니’, ‘아이는 언제 가질 거니’라는 것.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듣는 이들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 매년 느껴야 하는 스트레스의 시간이 되어 버렸다. 가족들 간의 만남은 다양한 구성원들의 모임이다. 남녀노소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사랑이라는 집착으로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화살이 되어 꽂히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오래 전 선종하신 법정 스님은 인연은 받아들이고 집착은 놓아야 한다고 설법하셨다. 사랑을 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멀리서 찾아온 자녀들에 대한 섬세한 배려의 말은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샘물과 같다.

조개는 밀물이 되면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영양분들을 빨아들이면서 이물질들을 뱉어내는 일을 수없이 한다고 한다. 조개의 몸은 날카로운 조개껍데기와 모래알들에 의해 찔리고 헤지며 많은 상처를 입는다. 그럴수록 조개의 몸속에는 새살이 돋고 그곳에 천연진주가 탄생된다고 한다.

올 추석에는 조개를 생각하며 진주와도 같은 소중한 가족들의 사랑을 느껴봄은 어떨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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