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원도심 입주작가들
제주원도심 입주작가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09.0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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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순 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종합예술센터 TF팀장

[제주일보] 연초 눈으로 제주섬이 뒤덮인 날, 원도심 일기를 써 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옛 제주대학교 병원 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떠났지만, 그 거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를 정리하자는 소박한 취지였다.

제주시의 삼도2동 문화거점 사업으로 빈 점포에 입주한 작가들과 상인들, 주민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작심삼일, 며칠 원도심 이야기를 끄적거리다가 말았다. 작심삼일은 핑계이고, 실제 만난 작가들의 듣고 옮기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원도심 입주작가 빈 점포 임대사업은 제주시가 원도심의 빈 점포를 임대해 작가들에게 작업공간을 제공하고 그들로 하여금 이 거리를 활성화시켜보자는 취지로 2014년 시작했다.

작가들의 얘기의 요점은 2년여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그 거리의 침묵을 온전히 작가들의 책임으로 돌린다는 것이고, 작가들을 마치 토산품점 주인으로 보는 일부 시선이 몹시 자존심이 상하다는 말이었다.

그들의 근황을 들어보니 이런 말을 듣기에는 속이 상할 만도 하다는 게 잠정적인 결론이었다.

한 작가는 그 거리를 ‘빙하기’로 표현했다. 한 달 매상이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 관리비를 내기에도 벅차다고 토로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 작가의 점포는 매일 문을 열고 방문객도 꽤 많은 그런 곳이었다.

반나절 이런 저런 얘기를 듣는 동안, 삼도2동의 거리 침체가 한 두 해의 반짝 지원으로 회복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입주작가들이 축제 등 여러 행사 때 플리마켓에 셀러로 참가하기도 하고, 제주도 문화예술재단의 공모사업에도 신청서를 내는 이유를 알게 됐다. 온전히 그 곳에서 활동만으로는 생존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3월 입주작가들은 비영리법인 제주원도심입주작가협의회(이하 협의회)를 꾸렸다. 협의회 회원은 개인사정으로 불참한 1명의 작가를 제외하고 12명. 작가들은 입주작가 간 연대를 공고히 하고 예술로 원도심을 활성화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작가들은 여전히 가게 문을 열고 창작활동을 하고 방문객을 맞고 있다. 그럼에도 삼도2동 거리는 여전히 고요하다. 옛 제주대학교 병원이 있던 시절에는 유동인구만 2500~3000명이었으나 지금은 몇 백명에 불과하다.

작가들은 내년이 되면 입주기간을 갱신해야 한다. 작가와의 계약기간은 1차 3년이다. 2년 연장할 수 있지만 제주시의 작가 활동 평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부분 작가들은 매일 점포 문을 열고 닫는다.

장기간 공간을 비우는 불량한 작가들도 있다. 제주시가 계약 당시 작성한 입주작가의 요건이 있을 것이다. 공적자금으로 마련된 공간에 대한 윤리의식이 불투명한 작가들은 입주공간을 내놓도록 해야 한다.

창작공간이 없어서 둥지를 틀지 못한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재계약을 할 때는 입주조건을 명확히 해 선량한 입주작가들의 자존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계절이 세 바퀴를 돌아 가을이 왔다. 그 사이 관덕정 앞 옛 집에 샌드위치 가게를 연 청년도 만났고, 옛 극장 앞 모퉁이 점포에 옷가게를 연 사람도 만났다. 향사당 뒷골목에 퓨전 음식점도 문을 열었다. 이렇게 삼도2동 주변 거리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어제 저녁 사무실 옆 공방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를 들었다. 공방이 개최한 작은 음악회였다. 멀리서 온 관람객들의 반응을 보니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빗줄기를 뚫고 들리는 음악이 이 골목의 긴 침묵을 조용히 깨고 있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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