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헙디강?"...제주의 풍습, 시대 맞춰 변해가네
"벌초 헙디강?"...제주의 풍습, 시대 맞춰 변해가네
  • 김태형 기자
  • 승인 2016.09.01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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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제주 벌초의 사회학> 벌초방학.모둠벌초 등 독특한 미풍양속...대행 서비스 등 세태 변화 뚜렷

[제주일보=김태형 기자] “벌초 헙디강?(벌초 했습니까?)”

어느덧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벌초(伐草)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 주말부터 도내 중산간을 비롯한 들녘 곳곳마다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매미 소리와 함께 예초기 돌아가는 전기음이 뒤섞여 울려 퍼지고 있다.

제주에서 벌초가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예전부터 스스로의 뿌리를 되돌아보는 미풍양속으로서 제주사회에서는 인사말을 나눌 정도로 전통양식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벌초는 제주 공동체를 이뤄온 대표적인 풍습으로 통해왔다. 하지만 급변하면서 현대화된 시대 속에서 분위기는 예전 같지 못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벌초의 의미를 돌아보기에 앞서 ‘귀찮지만 해야 할 짐’이라는 인식이 시나브로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벌초를 돌아보다=벌초는 조선시대 들어 장묘문화가 확산된 이후 대대로 전해 내려오면서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미풍양속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단순하게 본다면 500년 이전부터 이어져온 전통인 셈이다.

벌초는 음력 8월 초하루에서부터 보름 사이에 이뤄진다. 조상의 묘를 찾아 봉분에서부터 주변을 깨끗이 정리한 후 배례를 하면서 조상과의 연결고리를 새삼 일깨우게 된다.

벌초가 제주에서는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게 ‘벌초방학’이다. 학교마다 음력 8월1일을 임시 휴교일로 정해 학생들이 조상을 모시는 벌초에 참여하도록 했다.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도내 모든 학교에서 시행됐으나 2010년 이후에는 거의 행해지지 않으면서 세태 변화를 반영해주고 있다.

음력 팔월이 되면 일가(一家)나 친족끼리 한데 모여 벌초를 하는 ‘모둠 벌초’ 역시 다른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제주 고유의 풍습이다. 척박한 땅과 거센 바다에서 함께 도와가며 일하는 수눌음 및 공동체 정신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달라지는 벌초 문화=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로 급변하면서 벌초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벌초의 의미를 떠나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등의 바쁜 일상에 치이는 생활 여건과 함께 젊은 세대 이하로는 구시대적인 풍습으로 보는 인식 차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맞물려 벌초 대행 서비스가 성행하는 것도 달라진 풍속도 가운데 하나다. 도내에서는 2008년 9개 지역농협에서 시작한 게 현재 13개 농협으로 확대됐으며, 지난해에는 1600여 건에 이를 정도로 대행 실적이 급증, 달라진 세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핵가족화와 고령화 등으로 대변되는 가족구성원의 변화, 납골묘·납골당 선호 등에 따른 장묘문화의 쇠퇴, 벌초의 의미에 대한 세대 간 시각차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래도 벌초의 의미가 퇴색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조상과 후손을 연결하는 고리는 ‘벌초’와 ‘제사’다. 추석 명절이 사라지지 않는 한 벌초도 없어질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벌초의 근본적인 의미인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진정한 마음과 ‘근원’ 찾기에 있다. 어쩌면 조상들은 벌초를 통해 후손들에게 ‘한번 살아온 길을 돌아보기’를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김태형 기자  sumbad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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