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돼지’, 헌재로 가는 길 위에
‘제주돼지’, 헌재로 가는 길 위에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08.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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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기자] 다음달 초 개봉 예정된 영화 ‘밀정.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렸다.

‘밀정’은 의열단의 실존인물인 황옥(송강호·이정출 역)을 그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적은 친구처럼 다가 온다” “지금 이 열차에 탄 단원(의열단)중 한명이 밀정이다” 그 평범한 ‘적은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 이 영화에서 또 한 번 입증된다.

제주 양돈산업의 가장 큰 문제를 꼽으라면 이구동성으로 ‘악취’를 지적한다. 양돈장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는 축산악취는 특히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겐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섬 지역 고유의 청정한 자연환경과 맑은 공기를 기대하고 왔는데 숨쉬기조차 어려운 상황을 맞는다면 이는 분명 관광객을 맞이하는 제주의 도리가 아니다.

제주도민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 역시 이만 저만이 아니다. 안방 창문너머 돌아다니는 서늘하고 신선한 바람을 접하고 싶지만 현실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축산 악취가 집안 곳곳의 문을 틈새하나 없어 봉쇄했다.

 

#‘성난 민심’ 헌법소원 추진

제주도내 양돈장 가운데 299곳 가운데 악취 저감시설을 갖춘 곳은 100곳이 조금 넘고 있다.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농장에서 악취 발생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악취가 발생하는 양돈장은 대부분 오래전에 만들어져 현재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따라서 이들 양돈장 주변에 관광시설을 하거나 주택을 건립하는 사람들 입장선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해서 양돈장을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할 수가 없다. 양돈장 악취가 더 이상 엷어질 조짐을 찾을 수 없다고 믿은 성난 주민들이 ‘탈출구’를 찾아 나섰다. 제주 양돈농가들이 갖고 있는 ‘독점적 지위’를 허물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타지방산 돼지고기를 제주에 들어 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산 돼지고기도 무제한으로 반입되고 있는 마당에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들이 아무 탈 없이, 또 맛있게 먹고 있는 타지방 돼지고기를 왜 관(제주도)이 나서 제주도민들은 먹을 수 없게 하느냐고 항의하고 있다.

지방정부인 제주도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자신들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소수의 양돈농가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도민들과 관광객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논리가 저변에 깔려 있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양돈장이 밀집된 제주시 애월읍 고성 1·2리와 광령 1·2·3리 주민 등은 양돈산업을 감싸기에 급급한 현행 제주도의 축산정책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다. 한림읍 상명리 주민들은 최근 151명의 서명이 담긴 진정서를 제주도에 제출했다. 금악리 주민들은 마을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 ‘의미있는 저항’ 이제 시작

제주라는 사회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다. 또 제주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은 모두 상대를 존중하고, 서로에 불편을 주는 일 없이 행복한 삶을 기대하고 또 염원한다. 그런데 이 같은 사회구성원들의 믿음과 소망은 서로가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신뢰할 때 현실이 되는 것이다.

구성원 가운데 한명이라도 이를 어긴다면 그 사회는 크건 작건 파열음이 나기 마련이다. 특히 제주라는 사회의 구성원들을 돌보고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줘야 할 책무가 기본인 지방정부(제주도) 역시 적어도 축산악취 문제에서 만큼은 함량미달의 행정력을 내보인지 오래다.

축산악취를 대하는 행정에 대한 믿음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밑바닥 민심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결국 내부 구성원들 간 핏발을 세운 채 상대를 적으로 여기는 상황까지 오게 됐고, 구성원 모두가 공유해야 할 개개인의 행복한 삶은 곳곳에서 헐벗기고 있다.

축산악취를 ‘공공의 적’이라고 빗대 나온 말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나아질 기미는 더더욱 안 보인다. 이러다 선량한 제주의 양돈농가들까지 넘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제라도 양돈업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의미있는 저항’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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