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
말의 무게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6.08.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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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신정익기자] 말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도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나온 연유이기도 하다. 잘못 내뱉은 말은 천 냥의 무게로 그 사람을 누른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말로 인한 파문과 크고 작은 해프닝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여러 계층의 말 가운데서도 정치인의 말은 국민을 상대로 한 것이어서 어느 것 하나 가벼울 수 없다.
그럼에도 즉흥적이고 사려 깊지 못한 말로 국민을 분노와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는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적지 않다.
문제는 정치 지도자라는 이들이 국민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말로 상처를 주고 허탈감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것도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말이 국민들을 설득하고 공감을 얻기는커녕 되레 ‘뜨악하고’, ‘황당하게’ 만드는 걸 보는 국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국민들 사이에서는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신조어가 어느 새 ‘보통명사’가 될 지경이다. ‘유체이탈 화법’은 자신이 직접 관련된 사안을 마치 아무런 연관이 없는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 것을 말한다.
‘유체이탈 화법’이 익숙한 사람들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정말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거나, 아니면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아예 무시하는 경우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인물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최측근 참모이지만, 역시 대통령이 임명한 특별감찰관의 의뢰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특별감찰이 이뤄지기 전부터 우 수석에게는 여러 가지 의혹들이 꼬리를 물었다. 박 대통령도 버티다 결국 특별감찰을 명할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말씀’이 국민들 사이에선 ‘유체이탈 화법’으로 회자됐다. 지난달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하지 말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 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말 대단한 신뢰와 믿음의 표현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국민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으니 문제인 것이다. 오불관언(吾不關焉)도 이 정도면 도를 넘었다.
요즘 청와대는 이런 대통령의 ‘꿋꿋한 의지’에 힘 입어 더 센 말로 비판적인 여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
우 수석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에 대해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막말로 규정하고 나섰다. 더 나아가 ‘좌파세력’으로 몰아가면서 ‘식물정부 만들기’를 위한 음모라고까지 조이고 있다.
청와대의 생각에 어디에 이르고 있는 지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박혀 있다. 말의 ‘무거움’에 앞서 말의 ‘무서움’만 풍긴다.
‘유체이탈 화법’을 얘기할 때 이명박 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 말을 한 후 오래지 않아 측근과 친‧인척들이 이런저런 비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영어(囹圄)의 신세로 전락했다.
비단 대통령만의 일이 아니다. 언필칭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말의 품격과 신중함이 남과 달라야 한다. 실천하지 못할 공약, 추진하지 못할 정책을 인기에 영합해 발표해 놓고 스스로 그 말 때문에 족쇄가 채워지는 우(愚)를 범하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제주사회에도 말이 좋은 사람보다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책임지지 못할 말로 도민들을 현혹하고 뒷감당을 하지 않은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인사들이 여전히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인 남긴 말이 생채기가 돼 도민사회를 아프게 하는 경우도 있다. 말의 무게는 그런 것이다.

신정익 기자  chejugod@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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