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못한 숙제
아직 못한 숙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08.0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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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제주일보] 생일선물로 향수 ‘니나’를 받았다. ‘니나’는 ‘니나리찌’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큼 사랑을 받는 향수다. 밤 나팔꽃 향기, 달콤한 라임과 레몬향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향이다.

문득 이 냄새를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할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냄새가 좋다. 신비로운 느낌의 향이다. 세련미 넘치는 향이다라는 식의 표현으로 부족하다. 오히려 틀린 표현인지 모른다. 어렵다.

색채와 소리는 다른 이미지를 빌려서라도 전달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밤 나팔꽃 향과 레몬 향을 어떻게 글로 표현한다는 말인가.

냄새는 모양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저 후각만으로 느낄 뿐이다. 코를 통해 들어온 냄새는 한 순간에 퍼진다. 그렇기 때문에 두뇌를 구사하는 정도의 표현으로는 어림도 없다.

요즘 특히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냄새는 두뇌에 의한 판단을 초월한 곳에 있다. 인간의 생리에 근거를 둔 좋다 나쁘다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냄새를 표현할 때, 그 냄새를 느끼고 있는 인간의 좋음 나쁨을 쓸 수밖에 없다. 손발을 묶어 놓고 춤을 추라고 하는 식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감성은 각각 다르다. 순간순간의 기분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거꾸로 얘기 한다면 표현이 곤란한 냄새를 사용할 수도 있다. 한 순간의 느낌 상태를 표현하는 것, 그것도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바다. 바다는 많은 냄새를 가지고 있다. 말라 비틀어진 해초와 콘크리트 바닥에 버려진 작은 생선 썩는 냄새를 맡을 때는 싫다. 달아나고 싶다. 그러나 달리 어떻게 표현을 하랴. 멀리 수평선 저쪽에 석양이 지고 그 광대한 해면을 바람이 어루만지며 전해오는 바다의 냄새. 그런 냄새를 맡을 때에는 삶의 환희를 느낄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 냄새는 어쩌면 과학적으로는 분별할 수 없는 것일 게다. 아주 완벽하게 섞여있기에. 더렵혀진 항구에도 정결한 해풍은 불어온다. 그래서 ‘냄새’를 표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게 아닐까.

그 ‘냄새’를 표현하는 것과 씨름하는 건 어렵지만 해볼 만 한 투쟁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숙제로 남겨두었다. 오랜 시간.

예전에 제주는 분명 그 냄새가 있었다. 코끝에 걸려 타양에서 제주를 그립게도 했고, 제주의 계절을 느끼게도 했다. 골목골목 제주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계절마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그것을 실감했다.

허나 너무 정겹고 특이한 제주의 냄새를 표현하기엔 나는 역부족이었다. 숙제를 미뤄 두고 있었다. 좀 더 글쓰기에 단련이 된 후에 좀 더 확실한 표현을 발견한 뒤에, 써보리라고. 너무 오랫동안 밀려 둔 숙제를 이제는 아예 할 수 없게 되었다. 제주에는 이미 제주만의 냄새가 없어졌으니.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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