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8 한양 vs 2016 제주
1778 한양 vs 2016 제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07.25 1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근철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제주일보] “성에서 나오는 분뇨를 다 수거하지 못해 더러운 냄새가 길에 가득하며, 냇가 다리 옆 석축에는 분뇨가 더덕더덕 붙어서 큰 장마가 아니면 씻기지 않는다.”

조선 실학자 박제가(1750~1805)가 ‘북학의(北學議)’에서 묘사한 한양의 모습이다.

조선의 수도이자 임금님이 계신 한양이 이렇게 비위생적인 곳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2012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류학·고병리(古病理) 연구실의 신동훈 교수팀이 광화문·시청 일대의 조선시대 지층에서 다량의 기생충알을 발견함으로써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한양의 심각한 위생상태가 사실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 중반의 한양은 왜 이렇게 ‘불결한 도시’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신 교수팀의 설명에 따르면 폭증한 한양의 인구를 감당할 만한 충분한 위생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조가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길 당시 10만명 정도였던 한양의 인구는 정조 때에 이르러 당초 인구의 두 배인 20만명에 달했다. 그러나 급증하는 인구를 감당할 충분한 하수처리 시설이 없었던 한양은 더러운 오물로 뒤덮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눈부신 경제 발전과 인프라, 그리고 시민의식의 수준이 전혀 다른 지금의 우리 상황을 250여 년 전 한양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인구급증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파악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올해 6월 중 발표된 한국은행 제주본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의 주민등록인구는 연평균 2.5% 수준으로 계속해서 늘어나 2019년에는 69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관광객 수를 고려한다면 현재 도내 유동인구는 이미 80만명을 훨씬 넘었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인구와 관광객이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나면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해 천혜·청정·생명의 섬을 상징하는 삼다도(三多島)가 혹시 주택난, 교통난, 환경난에 시달리는 삼난도(三難島)로 오인받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성장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진통이므로 그 누구의 잘못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지금도 늦은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한국은행이 보고서에서 제안하였듯이 인구증가가 향후 제주도민의 안정적인 소득 증대와 고용 창출을 견인하는 발판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3난(難)을 해소해 나가면서 우리 후손의 먹거리인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을 발굴·육성해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쓰레기 등 환경 훼손과 교통체증의 원인 제공자에게 예외없이 범칙금을 부과하는 방법으로 수급을 조절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주택·교통·환경 인프라를 체계적이고 여유있게 확충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로운 성장동력은 제주의 ‘천혜·청정·생명의 섬’ 이미지에 부합하는 친환경·고부가가치 산업이 바람직하며 토착산업과 이전산업이 연계·공존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주특별자치도가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해 말 주택 10만호 공급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최근 계획인구 100만명을 목표로 하는 제주교통혁신계획 및 도시기본계획을 마련하여 추진하는 것은 ‘거안사위 유비무환(居安思危 有備無患)’의 정신에 걸맞은 조치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호황일 때 불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자치도나 의회의 책무이기 이전에 후손에게 불행을 넘겨주지 않아야 하는 바로 우리 도민 모두의 몫이 아닐까? 눈앞에 놓인 3난(難)을 해소하고 누구나 와보고 싶고 오랫동안 살고 싶어 하는 ‘생명의 섬’ 제주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불편함이 불가피하게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래의 대의를 위해 도민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기꺼이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는 것이 절실한 때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