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엘리트주의
일그러진 엘리트주의
  •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 승인 2016.07.1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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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변호사라는 말이 있다. 원래 이 말은 가톨릭 교회에서 성인(聖人)으로 추대할 인물을 심사하는 시성식(諡聖式)의 절차에서 나왔다. 가톨릭의 성인은 매우 높은, 도덕적 그리고 종교적인 기준을 뛰어 넘는 인물에게만 주어지는 제도로서 교황청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시성된다. 따라서 심사과정에서 대상자의 공적이나 기적을 적극적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의도적으로 어떤 사람을 지명해서, 대상자에 대한 결함과 시성의 부당함을 먼지 한 점까지 털어내는 역할을 맡긴다.

 

악마의 변호사

이러한 역할을 맡은 사람을 가리켜 악마의 변호사(데블스 에드버킷)라고 불렀다. 이 제도는 1587년에 생겼다가 400년만인 1983년에 가톨릭에서 폐지됐다.

1997년에 상영된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에서 주인공인 변호사 케빈 로맥스(키아누 리브스)는 63개의 사건을 맡아 한번도 패소한 적이 없는 미국 플로리다의 스타 변호사였다.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교사의 변호인으로 법정에 선 케빈은 피고인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바지 안에 손을 넣어 성기를 주무르며 쾌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변태성욕자에 성추행범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도 열정적이고 논리적인 변론으로 64번째 승소를 이끌어 낸다. 이후 뉴욕의 대형 로펌에 스카웃된 주인공은 사장 밀튼의 정체가 악마임을 깨닫고 절망에 사로잡힌 끝에 자신의 머리를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최근 교육부의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기자들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민중(국민)은 개.돼지와 같다”는 말을 해서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정책기획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대학구조개혁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교육부의 주요한 보직 가운데 하나로서 2급이 맡는 고위직이다. 나향욱은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 민중은 개.돼지이다.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라는 소신을 털어 놓았다. 민중은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국민의 99%”라고 말했다. 나향욱은 나중 여러차례 해명기회에서 진짜 본인의 소신이냐는 거듭된 질문에도 내 생각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말은 영화 ‘내부자들’에서 보수신문의 논설주간 이강희가 “대중들은 개.돼지들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할 겁니다”라는 대목에서 나왔다. 영화 내부자들은 우리나라의 정계와 경제계 그리고 언론, 검찰과 경찰의 유착관계를 고발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짓눌렀던 답답함과 치밀어오르는 분노가 결국 이렇게 현실로 대면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기득권층의 대변자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개.돼지로 바라보는 교육부의 고위 공무원의 시각. 과연 그만의 시각인지 되묻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을까. 우리나라 일부 권력자들의 편협된 사고에 분노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을까.

행정고시 출신에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동석한 기자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되지 않느냐 말에 “출발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라고도 했다.

그는 과로와 과음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여러번 해명기회를 줬지만 자신의 생각을 거두거나 접지 않았다. 그게 이 나라의 1% 사람들, 소위 엘리트라고 자청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라면 대한민국은 방향타를 잃고 표류하고 있는 선박이나 다름없다. 금수저를 쥐고 태어난 기득권층의 대변자인 듯 행세한 나향욱을 지켜보면서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이게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왜 개판이 되어가고 있는지는 이제 답이 나왔다.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고 정책을 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돼지가 주는 혈세를 먹고 살아가는 그들은 오히려 개.돼지에 의해 사육되고 있는 민중이 바로 그들이다.

저 하늘을 보며 물어보는 민중의 소리마저 개.돼지가 짖는 소리밖에 안 들릴까 해서 참담함이 더 가슴을 치게 하고 있다.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jongbae1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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