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의 부나비들
세상 속의 부나비들
  •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 승인 2016.07.0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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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깎아지른 절벽 꼭대기에 세워진 그리스의 메테오라 수도원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수도원에 들어가려면 오로지 밧줄과 그물로 만들어진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밖에 없는 그곳은 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그리스 정교회 소속의 봉쇄 수도원이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메테오라 수도원은 성(聖)과 속(俗)의 경계이다. 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라는 뜻이다. 현재 남아 있는 바위 절벽 수도원의 평균 높이는 암벽을 포함해 300m. 건물로 따지면 거의 100층 높이에 가깝다. 가장 높은 수도원은 550m에 달한다고 하니 말 그대로 ‘공중 수도원’이다.

11세기 무렵 이슬람 세력을 피해 산으로 산으로 피신하다 여기에 수도원을 세워 엄격한 규율을 중시하는 정교회의 전통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요즘은 수도원으로 통하는 계단과 진입로를 만들어서 외부인들에게 제한된 시간에만 일부를 개방하고 있다. 덕분에 내밀한 수도원을 잠깐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봉쇄 수도원

작가 공지영이 쓴 수도원 기행 2편에 보면 철저한 봉쇄생활로 온전히 자신을 봉헌한 이가 있다. 복잡한 현대인들에게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도원의 대부분은 봉쇄수도원이다. 제주에도 한림에 소재하고 있는 성글라라 수녀원이 한 예이다. 한번 들어가면 죽을 때에만 나올 수 있는 곳. 그런데 그 안에서도 방에서 나오지 않고 평생을 기도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 수녀가 있었다.

나자레나 수녀. 그녀는 젊을 때 미국 오페라 가수로 큰 명성을 얻었으나 어느 날 계시를 받아 이탈리아 로마의 산 안토니오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44년 동안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의탁하다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녀의 방에 있었던 것은 십자가 모양의 작은 침대와 편태(채찍) 그리고 가슴과 배에 둘렀던 가시나무의 복대 등이 전부였다.

두 평 작은 방에서 평생을 살았던 그녀였지만 그 속에서 무슨 죄를 지었다고 수시로 사제를 불러 고해성사를 봤다고 한다. 가톨릭에서는 미사 중에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다’는 회개의 기도를 바친다. 나자레나 수녀에게는 말과 행위보다, 생각으로 하느님께 지은 죄들일 것이다.

요즘 신문과 텔레비젼을 보기가 솔직히 겁이 난다. 온갖 썩은 물이 고여 배수구조차 막혀버린듯한 우리나라 정치권의 비리는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지만 부패의 강도와 횟수가 더 잦아지고 있다. 이는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터. 매일 쏟아지는 시커먼 뉴스에 아이들이 보고 들을까 두렵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이 볼까 낯이 뜨겁다. 하루도 매스컴에서 사라지지 않는 부패 소식들. 그 썩고 악취나는 곳. 여의도 정치가에 모여들었다가 사그라지는 부나비들의 현실을 보면서 왜 우리는 깨끗한 정치인을 가질 수 없는지 되물어진다.

 

구린 돈은 나락의 지름길

옛날 선비들은 썩은 정치판에 나가기를 거부해 산속에 묻혀 글을 읽었다, 요즘은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것을 가문과 개인의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할 정도이니, 옷에 냄새를 묻히던 말던 상관한 바가 아니라는 잘못된 우리들의 의식이 문제이다. 출세지향이 낳은 대표적인 대한민국의 수준이다.

나자레나 수녀처럼 평생을 두 평 안에 있으면서 죄를 짓는 것도 나약한 우리 인간이라면 그 두 평 안에 갇혀 살면서도 44년을 산 것처럼 강한 것도 인간이다. 그녀는 생각으로 지은 죄까지도 죽는 순간까지 고해성사를 보고 회개하고 성찰했다.

여의도의 돈은 먼저 보는 게 임자이고 주인 없는 돈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 돈은 나중 구린내를 풍기는 나락의 지름길이 된다.

쇠창살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은 봉쇄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아니라 세상에 갇혀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더 큰 창살에 갇혀 살고 있을 뿐이다.

 

 

김종배 상임 논설고문  jongbae1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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