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제주가 얻은 것 잃은 것
지난 10년, 제주가 얻은 것 잃은 것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06.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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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세도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십년 가는 권세 없고 열흘 동안 피는 붉은 꽃이 없다는 말로, 부귀영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6년 7월 1일. 이날 오전 제주국제컨벤션센터 탐라홀에서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기념식은 노무현 대통령의 영상 축하메시지, 김태환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기념사, 한명숙 국무총리의 치사 순으로 진행됐다. 특별자치도라는 현재의 제주도 행정시스템은 이렇게 출발했다.

제주에는 자치경찰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경찰’이 도입됐고,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정부의 감사원 격인 감사위원회가 생겼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기본적으로 노무현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의 기본 틀이었던 분권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큰 범주 속에서 탄생했다.

제주는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정부 권한을 지방정부가 독립적으로 행사하는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새로운 시험무대가 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후 4000건이 넘는 중앙정부의 권한이 제주로 왔다. 그런데 이들 권한이 도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얼마만큼 기여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쌓인다.

 

#관료 수중서 놀아나

군대를 다녀 온 사람들은 너나없이 훈련소에서 모진 훈련을 겪으면서 과연 자신에게 전역하는 날이 올까하는 절망 아닌 절망에 빠져본 경험을 갖고 있다. 오죽했으면 자신이 훈련 받았던 곳을 쳐다보면서는 소변도 보지 않겠다고 그토록 많은 주문을 걸었겠는가.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던 ‘쫄따구 시절’. 그런데 군대를 다녀 온 사람들은 시간이 흐른 뒤 그 어려웠던 시절을 늘 회상하며 ‘그 때가 좋았다’고 읊조린다. 한 때 ‘응답하라’ TV드라마가 안방을 사로잡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재의 삶이 팍팍한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에서 지난 10년이란 기간은 사람들에게 별로 생각나게 만드는 게 없다. 너나없이 어렵다고 한탄한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많은 도민들은 아직도 시장·군수가 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현재의 문제들에 핏대를 세운다. 이에 대해 지방정치권과 특히 관료집단은 도민 의식수준이라고 폄하한다. 시스템은 개선됐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구성원들의 생각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잘못된 발상이라고 겁박한다. 자연스럽게 특별자치도라는 제도는 관료들의 수중에서 놀아나고 도민들은 방관자 신세로 밀려났다. 오죽했으면 제주특별자치도의 헌법격인 제주특별법이 제주가 아닌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날치기 하듯 개정되기도 했겠는가.

 

#획일화에 자율 퇴조

제왕적 도지사.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때부터 가장 우려했던 단어다. 그런데 지난 10년은 그 우려가 결코 기우(杞憂)가 아니었음을 증명시켰다. 특별자치도 출범 후 몇 사람의 도백(道伯)이 제주도정을 이끌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제주도민들이 마음속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도백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제주도민들은 아직도 이른바 ‘제주판 3김’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더 떠올리고 있다. 그들은 관료조직은 물론 도민사회까지 줄서기를 강요했고, 획일화를 기치로 내걸어 자율성을 밀어냈다.

이는 분명 제주특별자치도의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 많은 권한이 어디에 행사됐는지, 아직도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지방정부의 존재 이유는 구성원인 도민들의 삶의 질과 그들 개개인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특별자치도가 출범이후 도민들의 행복한 삶과 그 기대는 좁아졌다. 과거 민선 시장·군수 때 있었던 ‘골목의 향수’가 되살아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10년전으로 되돌릴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 제도를 운영하는 관료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수혜자인 사회구성원은 불행해 질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 제주는 이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는 관료와 정치인이 아닌 제주의 주인인 도민이 중심에 서야 한다.

제주의 헌법격인 제주특별법 1조는 물론 어느 곳에서도 ‘도민주체’ 나아가 ‘도민중심’이라는 단어조차 찾아 볼 수 없는 슬픈 제주다. 지난 10년 제주는 ‘도민’을 잃었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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