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의미
만남의 의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28 1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용준 제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논설위원

만남이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일상생활에서 사용한다. 만난다는 것은 정말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를 갖는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삶이 바뀌고 또 그 반대로 삶이 꼬이게 되기도 한다.

2024년은 총선이 있는 해이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를 국회의원으로 선택하고 만날 것인지를 잘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때이기도 한 시점에 서 있다. 또한 남녀 간의 만남, 스승과 제자 간의 만남, 사업자와 고용자 간의 만남 등등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만남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만남 중에서 영원히 변치 않고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삶을 바꾼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배울 것이 있다. 여기 눈물 나는 인생을 살아온 조선 시대의 역사 속의 인물들을 만나보도록 하자.

먼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가면 추사유배지가 있다. 추사 김정희와의 눈물 나는 만남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추사는 아시다시피 금수저의 집안에서 학문에만 전념한 뼛속까지 조선의 선비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추사 김정희 하면 떠오르는 것이 추사체와 세한도이며 그것은 그의 대표적인 업적일 것이다. 추사체를 완성하기 위해서 추사는 벼루 열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자루를 몽땅 붓으로 만들면서 피나는 노력을 했고, 또한 그 피나는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물이다.

세한도는 어떻게 그려졌고 또한 국보 제180호가 되었을까? 여기서 우리는 추사 김정희와 그의 제자 이상적과의 만남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시대 형벌 중에서 사형 다음으로 중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제주로의 유배였다. 천혜의 고도인 제주에서 추사 김정희는 거의 10년 가까운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유배죄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따르던 수많은 동료와 제자들이 모두 돌아서서 그동안의 인연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그에게는 이상적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의 직업은 역관으로 오늘날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었다. 추사가 중국에 새로 나온 책을 보고 싶다고 하면 이상적은 중국으로 가서 스승인 추사가 보고 싶어 하는 책을 사서 보내 주었다고 한다. 

오늘날처럼 우편 제도가 완벽한 시대가 아니고 오로지 인편을 통해서만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수개월에 걸쳐서 중국에서 구한 책을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스승에게 보낸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제자가 보내 준 책을 받아 본 스승 추사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찡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제자에게 추사는 ‘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라는 문구가 말해 주듯이 소나무와 잣나무는 모진 세파에도 변치 않는 절개와 지조를 지키는 것처럼 사랑하는 제자인 이상적도 그런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제자라고 생각하면서 세한도를 그려서 주게 되었고 그 그림이 오늘날 국보 제180호가 된 것이다.

세한도를 보면서 추사 김정희가 그린 그림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속에 숨겨진 스승이신 추사와 제자 이상적의 눈물 나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진정한 세한도를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추사 김정희와 이상적의 만남이 없었다면 세한도는 우리 역사 속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세한도는 추사의 명작이면서 오늘날 사제 간의 정이 무너졌다고 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스승과 제자의 사랑과 만남을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추사가 제주에 유배를 와서 기거했던 추사유배지를 자녀들과 함께 가서 세한도가 그려지게 된 사연을 들려주면서 자녀 교육에 활용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라 여긴다.

요즘은 유채꽃과 벚꽃, 그리고 이제 제주의 아픔을 상징하는 마지막 나뭇가지에서 몸부림치는 동백을 볼 수 있는 시기에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옛 선현들의 발자취를 올레길을 걷듯이 놀멍 쉬멍 걸으면서 이 희망찬 봄철을 보낼 것을 강추하고 싶다.

이제 곧 총선이 다가오는데 누구를 선택해서 만날 것인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우리의 삶을 바꾼 만남처럼 우리 제주와 제주도민들의 삶을 바꿀 만남을 기대하면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