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순이삼촌' 탄생”
“4‧3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순이삼촌' 탄생”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4.03.26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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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집과 현기영 대담 ‘수급불류월(水急不流月)’
순이삼촌, 지상의 숟가락 하나,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제주도우다 등
소설가 현기영의 총체적 삶에 대한 대담 이어져
현기영 "세상은 그럼에도 살아 갈만한 가치 있다" 강조

“4‧3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쓴 것이 ‘순이삼촌’이었어요.”

지난 25일 오후 6시 조천읍 시인의집(대표 손세실리아). 

4‧3문학의 문을 연 소설가 현기영씨가 도민과 관광객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돌아봤다.

현기영 소설가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지상의 숟가락 하나’이다. 자전적 소설인데, 유년 시절부터 사춘기 진입기까지 제 경험과 성장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글을 꼭  써보고 싶었다. 당시 제주는 한 아이를 성장시켜주는 게 학교도, 부모도 아닌 자연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이 키워주고, 어린 친구들이 서로 키워주고, 선배가 이끌어주는 성장이었다. 책에 일곱 살때 겪은 4‧3 이야기가 포함된 것은 물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8년 소설 ‘순이삼촌’을 쓴 이유로 “4‧3이 주는 내면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본래 순수문학을 지향했고 1975년 순수문학으로 등단했다. 하지만 등단 이후 펜대를 잡게 되니 제주 주민이 앓고 있는 4‧3트라우마가 있었고 나에게도 있었다”며 “어릴 적 온 섬이 불타는 모습의 일부를 보았고 관덕정 뒤퉁이에 머리가 뒹구는 것도 봤다. 이는 트라우마가 됐고 이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문학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4‧3을 글로 쓴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군사정권 아래 근대의 잘못과 만행을 고발한다는 것은 (구속 등의)각오가 돼 있어야 했다. 책을 출간하기로 한 창작과 비평 출판사도 겁을 먹고 육개월 간 안 내고 있다가 그 해 가을호 계간지에 발표했다”고 말했다.

또 현 작가는 “순이삼촌 이후 순수 문학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지만 군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받는 고초를 겪었다. 나를 구속하고 고문했음에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못 했던 것은 오히려 재판 과정에서 4‧3이 만천하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몸이 시원찮긴 하지만 잘 견디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느낀 것은 독재정권이 망각의 정치를 구사해 모든 주민이 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잊으면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4‧3도, 5‧18도, 세월호도 마찬가지”라고 회상했다.

아울러 그는 “60세 이후 4‧3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등의 순문학 감수성으로 쓴 글을 잇따라 발표했다. 하지만 악몽을 꿨다. 두 밤에 걸쳐 군 수사기관에서 당한 고문 형태 그대로였다. 하지만 고문 주체는 군 수사기관이 아닌 4‧3영령들이었다. ‘네가 4‧3에 대해 뭘 한게 있다고 벗어나려 하나’라는 말이었다”며 “그래서 4‧3영령에게 바치는 공물로서 소설을 써보자는 마음으로 ‘제주도우다’를 썼다. 독립운동가도 많이 배출하고 지식인도 많았지만 4‧3으로 초토화된 조천 사람들의 삶과 열망, 청춘, 꿈을 그려냈다. 현재는 자연과 나무와 초원에 대한 에세이를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현 작가는 “제주는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섬이자 4ㆍ3을 겪은 섬이다. 미군정 당시 도민이 분단을 반대하고 저항한 것은 하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자랑스러운 항쟁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며“어떤 슬픔이나 참혹함에서도 굴복하면 안 된다. 세상은 그럼에도 살아 갈만한 가치가 있다고 독자와 도민들에게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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