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켈틱, 쿠바, 그리고 제주
그리스, 켈틱, 쿠바, 그리고 제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2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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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평론가 ‘예필’의 인문예술 강의 단상(斷想)
배진섭 문화예술연구소 함덕32 대표

얼마 전 제주 문화공간 마당에서는 작지만 재미있는 인문학콘서트가 진행됐다. 제목은 그리스, 켈틱, 쿠바 인문음악회였는데 문화평론가 김정욱(필명 예필) 작가가 해설과 진행을 맡은 일종의 렉처(강의)콘서트였다.

김정욱 작가는 주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으로 음악, 미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평론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제주도민과 문화예술인과의 만남과 교류를 위해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했다.

크게 3부로 나뉜 이번 콘서트에서 그는 그리스와 켈틱, 그리고 쿠바의 음악과 미술을 문화비평의 관점에서 강의했다. 중장년층이 대부분인 프로그램 참여자들 역시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댄싱 장면을 시작으로 기차는 8시에 떠나네(마리아 파란두리, 그리스), 오리노코강(캘틱우먼, 아일랜드), Chan, Chan(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쿠바) 등 해설이 곁들어진 국가별 대표 음악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특히 강의 후반에 쿠바 시인 호세 마르띠의 ‘소박한 시’를 도민 김동호씨(삼양생활문화센터장)가 낭송하여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비록 1회의 단발적 해설과 동영상 자료에 의존한 강의, 콘서트였지만 세 나라 문화예술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김정욱 작가는 아일랜드와 쿠바는 제주와 같이 섬나라이며 제주4·3과 같은 역사적 아픔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리스 또한 2500년 역사의 대부분을 억압의 시대로 보내면서 자유를 갈망했던 바 이는 마치 200년간 출륙(出陸)을 금지당하며 살아야 했던 제주의 역사와도 닮은꼴이 있다고 했다. 이런 역사의 유사성을 공유하면서 역사는 어떻게 일상의 음악과 미술로 스며들었는지를 살펴보려 한 것이 이번 강의의 목적이리고 그는 언급했다. 

한 사회의 개인 또는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 정신적 과정을 문화(文化)라고 했을 때 인문학은 이와 같은 문화 현상, 즉 인간의 가치와 표현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 현상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므로 자신의 주변과 환경, 그리고 삶을 이해하는데 인문학은 큰 도움이 된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강의는 필자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제주 인문학에 대한 일반 도민들의 관심은 생각보다 미흡한 것 같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때 전국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열풍이 유행처럼 불기도 했으나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그러들었다.

인문학이 갈수록 자리를 잃어간다는 느낌은 대학의 현실에서 나타난다. 특히 지방 대학들의 경우 인문대학 학과들의 저조한 경쟁률과 취업난으로 학과 통폐합의 수난을 겪는 사례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오죽하면 졸업생들 사이에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 졸업생의 90%는 논다)같은 자학(自虐)적인 신조어가 나오게 되었을까. 

단지 경제적 이유를 내세워 인문학의 가치를 폄하시킨다는 건 그릇된 발상이다. 오히려 인문학이야말로 융·복합시대의 경제 창출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관계와 소통, 그리고 창의성이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인문학은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장 실용적인 학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과 인문학이 결합된 이번 강의를 듣고 인문학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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