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판고(冊版庫)의 역사문화를 찾아서
책판고(冊版庫)의 역사문화를 찾아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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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 ㈔질토래비 이사장·귤림서원 원장

제주시 원도심을 걷다 보면 ‘책판고’에 대한 안내의 글을 두 곳에서 만난다.

책판고란 오래전 제주에서 인쇄한 책의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제주향교가 18세기 초 성밖으로 옮겨감에 따라 책판고도 성안 향사당 근처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01년의 신축항쟁과 4·3 등 여러 사건으로 책판고의 건물과 목판 등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표지석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의 인쇄문화는 세계가 알아준다. 신라는 703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다라니경(無垢淨光陀羅尼經)’을, 고려는 금속활자를, 조선도 활자를 개량하며 인쇄문화를 꽃피웠다.

특히 1236년과 1251년 사이에 간행된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일명 팔만대장경)’의 책판(冊版)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제주에서도 일찍 책판에 의한 인쇄물이 발간될 수 있었다.

사단법인 한국고서협회에서 발간한 ‘2023년 제주 고서전’ 안내 책자에는 조선시대 제주에서 판각한 ‘책판 및 출판물 목록 97권’이 소개되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인 1296년 팔만대장경의 서체와 판식에 따라 ‘金光明經文句疏(금광명경문구소)’라는 글이 제주 묘련사(애월읍 광령리 소재 추정)에서 간행되었다 한다.

1653년에 편찬된 탐라지에는 묘련사에서 가져온 종을 제주목 관아 입구 2층 종루에 설치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로 보아 묘련사는 목판 판각뿐만 아니라 철 주조 기술까지 갖추고 있었던 사찰이라 추정된다. 

금광명경문구소가 제주에서 간행되었다는 근거는 전남 송광사의 ‘曺溪山松廣寺史庫(조계산송광사사고)’ 등의 판본 끝에 “원정 2년(1296년) 高麗國濟州妙蓮社(고려국제주묘련사)에서 주지 안립이 주도했다”라는 글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또한 제주대학교 윤봉택 교수의 논문인 ‘13세기 제주 묘련사 판 금광명경문구의 사실 조명(2006년)’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금광명경문구소에는 고려가 원나라로부터의 독립을 기원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한다.

그러나 1374년 목호의 난 진압 과정에서 탐라의 거의 모든 문적이 소실될 때 이 글 역시 사라진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시대 제주에서는 100여 종의 서책이 간행되었다. 특히 黃石公素書(황석공소서) 목판본은 현존하는 국내 最古(최고)의 兵書(병서)로 제주에서 간행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이라 한다.

이 밖에도 제주에서 간행되어 전해지는 책판으로는 아동의 입문교재로 저술한 擊蒙要訣(격몽요결), 정의현과 대정현의 馬籍簿(마적부), 漢詩集(한시집)인 嶺海唱酬錄(영해창수록) 등 25권 정도라 한다. 

책판을 찍은 종이 원료인 닥나무는 제주 도처에서 재배되기도 했다. 한경면 저지리는 닥나무와 관련이 깊은 마을이다. 저지마을의 옛 이름은 ‘닥’이다. 저지의 楮(저)는 닥나무, 旨(지)는 마르의 한자 표기이다. 이렇듯 제주에서도 종이가 생산되니 책 또한 발간되었음은 자명하다 하겠다. 

제주목이라는 작은 지방에서 책판 100여 종 이상을 출판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다른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일인 만큼 그 의미와 가치가 대단하다 하겠다. 이는 곧 학문과 문화에 대한 제주선인들의 높은 열정과 욕구가 실현된 것 중 하나일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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