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지는 매체 간 경계...현대미술 속 '제주 한국화'
허물어지는 매체 간 경계...현대미술 속 '제주 한국화'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4.03.24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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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현대미술관 기획전
‘제주 한국화의 풍경: 사인화담’
제주현대미술관은 오는 6월 30일까지 미술관 일원에서 기획전 ‘제주 한국화의 풍경: 사인화담’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조기섭 작가의 '걷는 풍경'을 확대 조명한 가운데 올려다본 사진. 김나영 기자. 

매체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대미술의 단면 속 제주 한국화를 보여주는 전시가 눈길을 끌고 있다.

제주현대미술관(관장 변종필)이 오는 6월 30일까지 미술관 일원에서 선보이고 있는 기획전 ‘제주 한국화의 풍경: 사인화담’이다.

전시에는 제주에서 꾸준하게 활동해온 30∼40대 젊은 한국화가 4명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각기 다른 조형세계로 한국화와 서양화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오늘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유시도(流澌島) 연작을 내놓은 현덕식 작가는 수묵을 통해 마치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한 극사실적 기법으로 얼음이 녹아 흐르는 섬을 그린 화폭을 잇따라 내놓았다. 

관객들은 대형 화폭 사이를 거닐며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욕망을 상징하는 물질적 덩어리(얼음)가 녹으며 순수한 물로 돌아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작가의 바람을 느껴볼 수 있다.

은분과 호분을 활용, 은백색으로 신비롭게 빛나는 한국화를 구현하는 조기섭 작가는 마치 폭포수가 떨어지듯 천장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구도 속 보는 각도에 따라 물결과 색채가 달라지는 은빛 화폭과 섬, 그 아래 설치된 거울로까지 풍경이 무한하게 이어지는 ‘걷는 풍경’을 선보이고 있다.

이어 돌, 나무, 샹들리에, 푸른 머리의 소년 등 은빛으로 이뤄진 전시장 곳곳이 신비함과 사색으로 가득찼다.

이어 선보인 오기영 작가의 작품은 마른 흙 바탕 위에 그림을 새기는 건식 벽화 기법으로 작가 자신과 어머니의 고향인 바다, 돌, 나무 형상을 완성해 벽에 걸었다. 무차별적으로 사라지고, 버려지는 오래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작품에 담겼다.

미술관 특수 조명을 활용, 일부 작품은 마치 형광색과 같이 은은하게 빛났고, 대형 나무 건식벽화는 유리창 너머 미술관 나무 풍경과 병치돼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미성 작가는 우리 주변의 소박하고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과 무심코 스치듯 지나가는 제주 풍경을 비단이라는 재료로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려냈다.

재밌는 점은 장지에 비단을 겹치는 기법으로 인물과 풍경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한 화면에 반투명하게 겹쳐지면서 입체적으로 표현됐다는 것이다.

매체는 다양해졌지만 작품들에서 변하지 않은 건 한국화 특유의 여유와 담백함, 여백감이었다. 마치 자극적이지 않은 한식을 먹은 듯 여러 번 보고 나와도 질리지 않는 전시였다.

제주현대미술관에서 현덕식 작가의 화폭을 관객들이 바라보고 있다. 유시도 연작에는 얼음이 녹아내리는 섬의 형상으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김나영 기자.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오기영 작가의 '세화-제주 바다' 작품이 미술관 특수 조명을 받아 마치 형광처럼 빛나고 있다. 건식 벽화로 표현된 제주 세화 바다의 풍경이 화폭에 담겨 있다. 김나영 기자.
이미성 작가의 한국화 화폭이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작품은 실크에 그려진 그림과 장지에 그려진 풍경이 겹쳐진 가운데 입체감이 더해져 소개되고 있다. 김나영 기자.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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