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물 유산의 보전에 대한 소고
제주 물 유산의 보전에 대한 소고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2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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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박원배 제주지하수연구센터장

제주는 180만년 전에 시작된 화산활동이 거듭되면서 이루어진 화산섬으로 투수성이 높아 물이 잘 스며드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으로 상시 흐르는 하천이 드물어 지하수를 개발하기 전까지 물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제주 사람들은 오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열악한 물 환경을 극복하며 삶을 이어왔고, 그러한 물 이용 과정에서 고유한 물 문화가 형성됐다.

용천수는 화산섬 제주의 상징적인 물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용천수는 지층 속을 흐르던 지하수가 지표의 암석이나 지층의 열린 틈을 통해 솟아나는 물로 지대가 낮은 해안에 주로 분포한다. 용천수는 용도에 따라 구조가 세분되고 물 이용 방식에 따라 각 마을의 고유한 자원으로 거듭났다. 한편 중산간 사람들은 지형·지질을 고려해 ‘빌레’나 물이 잘 모이는 곳에 봉천수를 조성했다. 공동체는 봉천수의 바닥에 찰흙을 덧바르거나 소와 말을 이용해 바닥을 다지는 등의 물 빠짐을 예방하기 위한 여러 지혜를 모았다.

그러나 상수도 보급의 일반화로 전반적인 생활 체계가 바뀌었고 위생과 문화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제주 물 문화의 가치를 저평가할 우려가 있다. 현재의 용천수는 식수의 기능을 거의 잃었고 일부 빨래나 여름철 목욕, 농업용수 등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 봉천수의 경우 매립하여 도로나 마을회관, 공공의료시설 등의 새로운 공공재로 활용하거나 연못과 생태 습지로 주민들의 휴식과 힐링의 장소로 제공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누대에 걸쳐 이룬 물 이용의 역사와 문화의 가치도 함께 잊혀지는 것이 아쉽다.

그나마 지금까지 마을 곳곳에 646개소가 넘는 용천수가 보전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용천수를 중심으로 제주의 물 문화 가치를 발굴하고 지속가능한 활용과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모하는 일이다. 이것은 제주의 물 문화 가치를 전승하는 하나의 방안이며, 궁극적으로는 살아있는 물 유산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이다.

제주의 물 문화에 유산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단순히 화려한 위상을 쫓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제주 물 이용의 역사와 문화는 유산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유산의 가치를 밝히고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이다. 첫째, 용천수는 오랫동안 제주 사람들의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되어 생명수라 할 만하다. 둘째, 용천수와 봉천수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는 공공자산으로 주민들의 희생과 관리가 따랐던 공동체의 산물이다. 셋째, 마을 사람들의 정보가 교류되는 공동체의 상징적인 장소이며, 특히 물 이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여성들의 문화가 형성되는 매개체였다. 넷째, 혼례와 상례, 집짓기 등 큰일에는 물부조 문화가 작동하였고, 마지막으로 백중 물맞이라는 치유문화가 세시풍속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제주의 물 문화는 물의 소중함을 깨우칠 뿐만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생활 문화를 전반적으로 엿볼 수 있으며, 특히 제주의 공동체 정신과 여성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물 유산은 마을공동체가 전통지식과 기술을 토대로 물을 이용하면서 견고하게 쌓은 유·무형의 문화 가운데 미래 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 이제 그 가치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물을 효용자원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물 문화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연계하고 활용해 문화와 관광자원, 물과 관계된 교육 자원 등으로 새롭게 접근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유연하게 가치를 부여하고 활용하는 태도가 살아있는 물 유산으로 보전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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