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집 주인장의 지혜
호떡집 주인장의 지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1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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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 ㈜숨비 회장·논설위원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현지의 문화가 한껏 느껴지는 특색 있는 길거리 음식에 매료되게 마련이다. 뉴욕 대표 길거리 음식인 핫도그(hot dog), 일본 문어빵인 타코야키(たこやき), 터키 전통 패스트푸드인 케밥(Kebab) 그리고 중국 꼬치구이인 샤오카오(烧烤)등이 그 예이다. 우리나라에도 한국인의 소울푸드라 할 떡볶이, 꼬치어묵, 붕어빵, 호떡 등 대표적 길거리 음식이 있지 않던가?

얼마 전 서울 종로를 갔다가 광장시장에 몰려있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보았다. ‘광장호떡’이라는 조그만 입간판 뒤 설치된 가드라인에 줄 맞춰 서 있는 그들을 보며 20여 년 전 기억이 되살아 났다.

당시 서울 종로의 삼청동에 가면 ‘한국 관광 Must Do’ 목록에라도 있는 듯, 사진기를 둘러맨 외국 관광객들이 긴 줄을 서 있는 호떡집의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필자도 거짓말 보태 몇 백 미터가 넘는 기다리는 줄의 비밀이 궁금해 나도 모르게 그 대열에 낀 적이 있었다. 십 여분을 기다리니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어디서 왔느냐’는 등 넉살 좋은 질문을 하며 주문을 받은 주인은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나 긴 줄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여유만만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 10개는 동시에 구울 수 있는 커다란 호떡 불판 위에 차례가 온 손님의 주문(꿀호떡인지, 야채호떡인지)을 듣고 주문 개수만큼의 재료를 불판에 올려놓는다. 되레 내가 답답해서 ‘기다리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동시에 여러 개를 안 구우시냐’고 물으니 묘한 웃음만 지으신다. 그것이 그 주인장 나름의 장사 비법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 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였다.

그 즈음 서울 명동에도 사오정 피자라는 1000원짜리 길거리 피자가 생겼다. 피자라면 몇 만원하는 비싼 음식으로만 알던 시절, 저렴한 가격대비 알찬 맛으로 명동 중앙거리에 기다리는 사람이 종로호떡 못지않게 긴 줄을 자랑하는 명동의 명물이 되었다. 사오정 피자의 주인은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피자 굽는 기계를 2대에서 10대로 늘려 발 빠르게 대처했다. 하지만 그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결과였다. 소비자들은 기다리는 줄 없는 사오정 피자를 외면하였고 결국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호떡집 주인장의 지혜는 이제 ‘줄세우기 마케팅’이라는 공식적 마케팅 기법으로 불려지며 대기업도 도입하는 마케팅 기법이 되었다. 일반적인 경제 상식으로는 수요를 충족할 만큼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기다리는 긴 줄이 광고 효과를 가져 온다는 사실은 간과하기 쉽다.

2022년 제주관광 조수입은 7조6000억원을 찍으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엔데믹 시대 해외여행 빗장이 풀리면서 다시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때 필요한 것은 기다림의 느긋함과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그 가격에 걸 맞는 알찬 서비스를 준비하는 일이다.

여행은 항상 더 새로운 곳을 찾게 마련이다. 자주 온 여행지는 다시 올 확률이 낮아진다. 어차피 일생에 몇 번 오는 제주도라면 제주도 관광객 유치를 서둘지 말고 줄을 세우자. 그리고 바람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듯 억지로가 아닌, 태양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듯 제주도에 흠뻑 젖어 스스로 선택해 소비 할 수 있는 제주다운 상품과 풍경을 준비해 놓자. 그러면 조만간 '제주관광 조수입 10조원 시대'라는 꿈같은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꿈은★이루어진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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