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로 벚꽃을 사랑하는 이유
전농로 벚꽃을 사랑하는 이유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1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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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축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오는 주말 제주시 전농로 왕벚꽃축제(22~24일)가 개막을 알리면, 축제는 애월읍 장전리(23~24일)를 돌아서 바다 건너 진해 군항제와 화개장터, 섬진강으로 달릴 것이다.

누가 뭐래도 봄은 벚꽃이다. 올해는 겨울이 따뜻했던 탓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꽃이 피었다. 전농로 왕벚꽃 ‘알림이 나무’도 지난 주에 문득문득 꽃봉우리가 보이더니 어제(17일)는 봄눈이라도 내린 듯 제법 화사해졌다.

나는 전농로 왕벚꽃 거리를 사랑한다. 거칠어진 가지마다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는 것은 인고(忍苦)의 세월을 잊으려고 하는 걸까. 이 거리엔 백년 나무, 옛 등걸에 놀라울 정도로 벚꽃이 눈부시게 피어난다. 그리고 꽃은 또 순식간에 지고 처절한 녹음으로 덮는다.

▲벚나무는 활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군수품 방산(防産) 물자였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벚나무를 조달하려고 애를 쓴 기록이 나온다. 우리나라에 벚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은 때는 조선 효종 때다. 병자호란을 겪고 왕위에 오른 효종은 그 때의 치욕을 설욕하려고 북벌을 계획하고 전국 각지에 벚나무를 대대적으로 심게 했다. 활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 천연기념물 제38호인 구례 화엄사 경내에 있는 수령 300년이 넘은 벚나무가 그 때 심어진 것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다. (박상진, ‘궁궐의 우리나무’, 눌와, 2001)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의 64%도 벚나무로 만든 것이다. 잘 꺽이지도 않는데다 좀처럼 썩지도 않는 나무다.

▲이런 좋은 점에도 벚꽃의 일본말 ‘사쿠라(櫻)’는 우리나라에서 배신자 등 나쁜 의미로 쓰였다. 옛날 어떤 일본 사람이 쇠고기를 샀는데, 집에 와서 자세히 보니 분홍빛 벚꽃 색깔과 비슷한 말고기(사쿠라 니쿠, 櫻肉)였다. 이 사람이 “사쿠라”를 외친데서 이런 의미가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 우리 정치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신의를 저버리는 정치인을 ‘사쿠라’라고 했는 데 요즘 신세대들은 ‘사쿠라’라는 말은 모르고 ‘BS’라고 한다. 벚꽃에 배신자라는 굴레가 사라졌다. 차제에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BS’ 들을 모두 다 걸러내었으면 좋겠다. 다시는 21대와 같은 ‘최악’의 국회가 이 땅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그래서 눈부신 벚꽃처럼 인고의 꽃을 피우는 참된 정치인들이 22대 국회에 많이 진출하길 기대해본다.

▲벚꽃과 함께 시작되는 4·10 총선 바람은 벌써 거세다. 후보자 등록(21~22일)에 이어 28일부터는 공식 선거전이 시작된다. 그러나 아무리 표(票) 바람이 세다한들 봄 바람만 하랴.

가벼운 봄비가 내리고 바람은 따사롭다. 누가 가는 봄을 말리랴.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각를 벗어놓으면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지 모르니까.

일상을 내려놓고 ‘꽃멍’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난 겨우내 입었던 패딩도 벗어놓고.

또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다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흐드러진 전농로 벚꽃 그늘에 앉아 있으면….

그렇게 한 번 봄을 타게 되면 혹시 가는 세월도 잊을지 몰라.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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