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 만들어낸 제주역사 ‘밭담’ 보전대책 서둘러야
돌로 만들어낸 제주역사 ‘밭담’ 보전대책 서둘러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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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제주일보-KCTV 크로스미디어 기획
제주밭담 특집, 우리는 돌 위에 산다
(3)제주밭담 보전, 국내.외 농업유산 보전 실태는 ?
세계중요농업유산 인증서 FAO. 2014.
세계중요농업유산 인증서 FAO. 2014.

201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된 제주 밭담.

국제연합식량 농업기구(FAO)에서 지정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제도는 오랜 세월 전승돼 온 농업 지식과 문화를 보전해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고안됐다. 

고성보 제주대학교 산업응용경제학과 교수는 “열악했던 제주 농업의 가치가 인정을 받고 그 가운데 밭담이 만들어진 과정이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성과”라며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의 의미를 평가했다.

이를 계기로 제주도를 제주답게 만들 수 있는 독특한 문화자원으로서 밭담을 활용할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러나 제주밭담은 이 같은 기대와는 달리 현재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이를 뒷받침해야 할 보존 방안은 여전히 미흡하다.

그나마 몇몇 대책조차도 예산을 확보하지 못 하면서 자연스레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10주년이 되는 매우 뜻깊은 해다. 1

0년 전에 걸었던 기대와는 달리 제주밭담은 각종 개발사업 등으로 훼손되거나 심지어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지역도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는 제주밭담을 포함해 총 다섯 곳이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전라남도 완도군의 청산도는 논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작은 섬이다. 이곳에 제주밭담과 함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구들장논이 있다.

청산도는 섬 전체가 비탈진 산으로 둘러싸여 농사지을 면적이 매우 적은 지역이었다.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경사진 땅을 평지로 만들고 그 위에 산에서 나온 돌로 샛똘을 쌓고 석축을 쌓았다.

위로 만들어진 통수로에는 산 위에서부터 가장 밑에 있는 논까지 계단식으로 물이 흘러 내려온다.

이렇게 맑은 물이 흐르는 구들장논이 만들어졌다. 

구들장논의 구조.
구들장논의 구조.

제주와 비슷한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 구들장논도 마찬가지로 자연적 제약을 이겨내야 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서려 있는 유산이다.

KCTV취재진이 방문한 청산도의 구들장논은 그 형태를 잘 유지한 채 지금도 주민들의 농사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청산도 주민들은 일찍부터 구들장논의 가치와 보존 필요성에 공감하고 보존협의회를 구성했다.

구들장논 소유주 및 관련 주민들로 구성된 보존협의회에서는 구들장논 보수작업, 체험장 운영 등의 보전활동과 기부후원제도인 구들장논 오너제를 시행해 왔다.

박근호 구들장논 보존협의회 회장은 “한 사람이 3만원을 입금하면 그에 약간 못 미치는 양의 수확물을 보내주는 오너제도가 구들장논 보전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박근호 회장은 “특히 고령화와 일손부족이 심한 농민들에게 오너제도는 구들장논을 이용한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줬다”고 덧붙였다.

자신들의 농업유산에 자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한 청산도 주민들, 특히 구들장논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과 이로 인한 적극적인 관리방법을 도입한 것이 훼손을 막고 보존하는 방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고성보 제주대 교수는 “밭담이 놓여있는 위치와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 정답이 있다” 면서 “밭담이 보전되지 않는 큰 이유는 밭담의 소유자가 그것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밭담을 무너뜨리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소득증대로 이어지는 일종의 자본투자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유럽에서 도입됐던 자연경관 직불제 등의 제도도 밭담 보존의 한 방법으로 대안이 될 수 있다.

현대화와 각종 개발의 흐름 속에 빠르게 변해가는 제주도가 행정적으로 적극적인 보존 정책을 만들고 이에 대한 행정력을 집중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잣담위를 걸어가는 농민의 모습.
잣담위를 걸어가는 농민의 모습.

제주의 서쪽, 애월읍 금성리에는 여느 밭담과는 다른 특이한 밭담이 있다.

일반적으로 낮고 좁은 밭담과 달리 한 눈에도 높고 견고해 보이는 밭담, 바로 잣질이다.

잔돌로 만들어진 길이라는 뜻으로 사람이 담 위로 통행할 수 있도록 넓고 크게 만들어졌다.

밭과 밭 사이 길이 없는 밭 주인들을 위해 농로로 지어진 것이다. 잣질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누구나 이용 가능한 농로의 역할을 했다.

제주 공동체 정신인 수눌음 문화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공동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밭담.

이 소중한 유산을 지키기 위해선 이 역시 우리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밭의 주인과 밭담의 가치를 누리는 우리의 의식변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 줄 행정적 대책 등이 조속히 마련돼야만 밭담의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돌 위에 산다.

돌로 일궈낸 제주의 역사, 그 역사의 유산인 제주밭담의 문제가 단순히 밭 주인과 일부 관계자만의 숙제가 아닌, 돌 위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숙제임을 기억해야 한다. 
 
특별취재팀=김석범 KCTV제주방송 보도국장, 박병준 KCTV제주방송 영상취재 기자, 이현 KCTV제주방송 뉴스PD
 

*‘우리는 돌 위에 산다’ 기획 프로그램은 KCTV 제주방송 홈페이지와 VOD 다시보기를 통해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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