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노리오롬은 몽골어 노로(нуруун)로 한라산을 향한다
큰노리오롬은 몽골어 노로(нуруун)로 한라산을 향한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14 1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9. 봉개동 큰노리오롬

2024년 설을 보내고 사흘째 되는 날이다. 설 명절 전에는 연이은 폭설로 인해 명림로는 통제돼 노루오롬으로 갈 수 없었다. 설이 지나고 며칠 맑은 날씨로 비자림로와 명림로의 통제가 풀리며 일찍이 조사하던 노루오롬을 찾았다. 지난주에 노루생이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4년 만에 마쳤는데 이번에 큰노루오롬 족은노루오롬도 일단락 지으려고 다시 찾았다.

큰노루오롬·족은노루오롬의 주소는 모두 같아서 봉개동 산 294-22번지이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으로 찍어서는 찾아가기 어렵다. 큰노루오롬과 족은노루오롬은 주소가 같기 때문이고, 하나의 오롬과 다름 없다. 그래서 여기서는 큰노루오롬만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큰노루오롬은 4·3평화공원과 마주하고 있는데 큰노루오롬으로 가는 입구는 어중간하다. 잘못하면 입구가 헷갈릴 수 있다. 큰노루오롬의 입구는 몇 곳인데 서쪽으로는 어린이교통공원, 북쪽으로는 제주시청소년야영장, 동쪽으로는 한라경찰수련원 쪽으로 탐방할 수 있다. 그리고 청소년야영장으로 가는 탐방로는 조금 더 가면 한라경찰수련원 쪽과 합쳐진다. 어린이교통공원으로 나가는 길의 종점은 큰노루오롬 정상까지인데 한라경찰수련원이 세워진 후에 큰 돌로 된 계단도 만들고, 잡목과 억세 밭을 정리하여 길을 내어서 정상까지 나가는 길이 생겼다. 옛날에는 서쪽(어린이교통공원)에서 오롬 정상까지 탐방하고 다시 되돌아와야 했지만, 지금은 동쪽(한라경찰수련원)으로 순환하여 탐방을 마칠 수 있게 되어서 좋다.

김종철의 ‘오름나그네’ 또는 제주도 발행 ‘제주의 오름’은 연동의 노루생이와 봉개동의 노루오롬을 꼭 같이 노루사냥과 연결 지어 말한다. 김승태 ‘제주의 오름 368’에서도 노루=노리와 노리+손(쏘다의 고어)라고 하지만 필자는 연동 노루생이는 ‘노루세미’에서 온 말이고 큰노루오롬·족은노루오롬은 노루와 무관한 몽골어의 ‘산맥으로 연결된 봉우리’ 뜻으로 본다.

오름은 한국어 ‘오르다’라는 말의 명사형이다. 또한 제주의 ‘오롬’은 북방언어로 독립된 하나의 화산체로서의 봉우리를 말한다. 또한 ‘노로’는 여러 개의 봉우리로 연결되는 산맥과 같이 연결된 화산체를 일컫는다. 몽골에서도 들판에 하나씩 솟아오른 화산체 봉우리는 ‘오롬’이라고 하지만 ‘태를지국립공원’의 봉우리 같이 연결된 산맥의 경우는 ‘노로нуруу’라고 한다.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에서 노루오롬의 유래·어원을 “노루는 옛말인 ‘노→노로’의 제주방언으로 ‘노리’가 됐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옛말 그대로 ‘노로’라고도 한다. 노리손이는 노루를 사냥하는 오롬”이라고 하였으나 노루=노리는 맞지만 노루오롬은 노루와 무관하다.

김승태는 그의 저서 ‘제주의 오름 368’에서 “…연이어 지는 오름들의 품평회가 장관을 이룬다. 즉 바농·족은지그리·큰지그리·민오롬·족은절물·큰절물·개오리·거친오롬으로 이어지는 오름들은…8폭 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라고 하였듯이 노루오롬의 ‘노루’는 제주어 ‘노루=노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제주 어디에도 여기 만큼 노루가 없는 곳은 없다.

몽골어 노로нуруу는 ‘뒤·등’이라는 말로 이 지역에서 제일 높은 거친오롬의 뒤 일 수 있고, 노로온нуруу(н)은 ‘등뼈·척추’라는 뜻으로 지리학에서 ‘산마루·산등성이·산의 능선’이라는 말이다. 이는 애월 노꼬메의 ‘노’도 같은 뜻인데 태백산·소백산이 산맥에 있는 것 같이 한라산은 산맥으로 쓰이지 않았으나 몽골인들은 이곳을 한라산으로 가는 산맥으로 보았다.

필자는 동쪽 편으로 나 있는 한라경찰수련원에서 탐방을 시작한다. 수련원 뒤편으로 나가면 큰 돌들로 층계가 만들어졌다. 조금 더 나가면 키만큼 자란 억새와 마른 고사리들이 흑갈색으로 덮였다. 큰노루오롬은 삼나무나 편백나무는 심지 않고 소나무만을 심었다. 정상에는 네 개의 통나무 의자가 있으나 소나무에 가려 전망이 전혀 없는 원추형 오롬이다.

예전에는 서쪽으로만 오갈 수 있었는데 테크 층계, 윤노리나무도 보인다. 한참을 내려오니 산담을 쌓은 묘가 보인다. ‘유향별감의 묘’이다. 조금 더 내려가니 테크가 깔리고 목재 기둥이 보이는데 그 아래 숲에는 노란 복수초들이 막 피어난다. 정초에 보이는 복수초라니….

나무테크를 벗어나면 쭉 심김 편백나무들이 보인다. 조금 지나면 키 큰 팥배나무와 떼죽·산벗 같은 낙엽수들 속에 비자나무·구럼비·줄사철·인동초 등의 푸른 나무들도 낙엽진 숲 사이로 햇빛과 숨바꼭질한다. 2월, 오솔길에 피어날 봄꽃이 그리운 계절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