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미술기자가 펴낸 ‘문화재 비화’
우리나라 최초 미술기자가 펴낸 ‘문화재 비화’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1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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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비화(韓國文化財秘話)(한국미술출판사 1973)
한국문화재비화(韓國文化財秘話) 표지.
한국문화재비화(韓國文化財秘話) 표지.

고서든 고미술품이든 간에 옛 물건에는 남다른 사연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머금은 세월의 두께가 두터운만큼 하고픈 말이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골동을 살 때 듣게 되는 그 물건에 대한 ‘사연 팔이’에 현혹되지 말고 기물 자체만 놓고 판단하라는 업계의 격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사연이 진실인지 아니면 수완 좋은 장사꾼의 장광설(長廣舌)인지 웬만해서는 구분해 내기 어렵기에 낭패를 면하려면 그저 스스로의 안목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걸리는 시간은 각기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수련 기간을 거쳐 그 ‘스토리’의 유혹을 이겨내고 옛 기물이 뿜어내는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면 실패할 가능성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모든 일에 늘 완벽하긴 매우 힘들다. 감식안 좋기로 유명한 분들도 순간 아차 해서 망신살이 뻗치는 일도 업계에선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저 방심하지 않고 계속 열심히 수련해서 그 여지를 줄이려 노력하는 수밖에….

이렇게 이런저런 사연이 많을 수밖에 없는 업계의 얘깃거리를 모아서 낸 책들은 우리 고미술이나 문화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요즘엔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오늘은 그 ‘시조새’(?)격에 해당하는 책 한 권을 소개해 보련다.

바로 ‘한국문화재비화(韓國文化財秘話)’(한국미술출판사, 1973)로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 전문기자라고 불리는 이구열(李龜烈 1932~2020) 선생이 1972년 5월부터 11월까지 총 100회에 걸쳐 ‘서울신문’의 특별기획으로 연재했던 ‘문화재 비화’를 묶어 낸 책이다.

한국문화재비화 내용 일부.
한국문화재비화 내용 일부.

그는 고미술(문화재)에서부터 근·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헌과 신문 기사, 작가와의 인터뷰 등 우리 미술사의 기본 자료를 직접 발품을 팔아 발굴·분석하고 숨은 이야기와 정황까지 꼼꼼하게 기록하여 한국 근현대미술사 연구의 기반을 닦았다고 평가받는 미술평론가였다.

선생은 이 책 후기에서 ‘최근 100년 동안에 한국의 문화재가 겪은 온갖 영욕과 수난의 비화들을 과거의 확실한 기록과 믿을 만한 증언에 입각’해서 그 전모를 밝히고자 했지만 황수영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치밀하게 조사·기록해 두었던 여러 권의 노트’가 없었다면 쓸 수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은 그저 ‘읽기 쉽게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혹은 전문(全文)을 인용·소개했을 뿐’이라고 겸사(謙辭)를 남겼지만 이 책이 절판된 후 20여 년이 지나 ‘한국문화재 수난사’(돌베개, 1996)로 재판되었을 땐 “그만 하니까 이만한 책이 되었다”(목수 신영훈)거나 “우리 문화재의 훼손과 도난에 대한 분노와 아픔을 토로한 일종의 기록문학”(미술사학자 유홍준)이라는 평가를 받아 그의 노고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작성한 기사에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거북 ‘구(龜)’자를 이니셜로 쓴 까닭에 자연스럽게 ‘거북이 기자’로 불린 선생은 한 인터뷰에서 ‘거북이처럼 느긋하게 50여 년 간 미술만 보고 걸어온 삶’(한겨레)이었으며 ‘할 수 있는 재주가 그 것밖에’ 없었다고 회고하고 있지만 다들 ‘지난 날 우리가 겪었던 그 치욕의 자취를 정확하게 찾아서 기록함으로써 그 같은 역사가 두 번 다시 없기를’(재판 추천의 글) 바랐기에 여전히 ‘미술·문화재 담당 기자들의 필독서’로 인정받는 게 아닐까 싶다.

이구열 선생(1932~2020) 사진.
이구열 선생(1932~2020) 사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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