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이다
그래도 봄이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1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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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시인

툭하면 내리는 비에 옴짝달싹하기 싫어진다. 며칠 비 오는 날씨에 집안에만 있었더니,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봄의 기운을 놓칠까 싶어서 설레발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순을 틔우는 잔디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간다. 온갖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는 봄도 좋지만, 이맘때면 매서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알리는 전령들을 보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잔 다르크를 연상하게 한다. 

텃밭에 고개를 내민 제비꽃을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씨 번지기 전에 뽑아야 한다고 야단이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안간힘 쓰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의 삶과 닮은 것 같아 잡초가 아닌 야생화라고 에둘러 말하게 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어릴 적이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신고 갈 빨간 구두가 생겼다. 구두는 안방 장롱 위에 얌전하게 올려져 있었는데, 구두를 신는다는 설렘에 입학식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막상 입학식 날이 되자 몸이 안 좋아져 어머니 등에 업혀 입학식에 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돌담 위에 앉아 선생님 부름에 대답하는 친구들만 바라봤다. 그래도 크게 속상하지 않았던 건 남들은 신지 못한 빨간 구두를 신었다는 행복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정말이지 그때 빨간 구두를 신기 위해 하루하루 손을 꼽으며 기다렸다. 그때의 기다림과 지금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땅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수한 생명의 기다림은 같은 맥락이 아닐까.

비 그치고 햇살이 머무니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도 봄이라고 달래를 캐다 달래장을 만들어 김에 얹어 먹어도 보고, 된장찌개에 넣어 먹어도 본다. 달래 한 줌만으로도 봄은 입안에 자리 잡는다. 거기다 맵싸한 달래무침를 흰밥에 얹어 먹으면 겨우내 잠들어 있던 뇌세포들이 톡톡 자리를 털어 봄을 일으킬 것만 같다. 생각만으로도 침샘을 자극하는 맛이다. 오늘은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봄마중 가야겠다. 달래도 캐고 쑥도 캐면서 ‘큰일 났다, 봄이 왔다.’ 온몸으로 외치며. 
  
큰일 났다, 봄이 왔다
비슬산 가는 길이 꿈틀거린다
꿈틀꿈틀 기어가는 논둑 밑에서

큰일 났다, 봄이 왔다
지렁이 굼벵이가 꿈틀거린다
정지할 수 없는 어떤 기막힘이 있어
색(色)쓰는 풀꽃 좀 봐
벌목정정(伐木丁丁) 딱따구리 봐

봄이 왔다, 큰일 났다
가난한 내 사랑도 꿈틀거린다

- 강현국 ‘후렴’ 전문 -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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