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생이(노리손이)오롬은 노루세미의 변형된 이름이다
노루생이(노리손이)오롬은 노루세미의 변형된 이름이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0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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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노루생이오롬

앞을 수없이 오가며 몇 계절, 몇 년이 흘렀다. 그렇지만 노루생이는 변함없이 상록의 모습인데 도무지 유래를 알 수 없어 속상했다. 그래서 이런 노루생이를 보며 짜증도 났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4년이 지나며 이제 나름에 관(觀)이 생기며 그 유래를 찾았다.

노루생이 삼거리 북동(北東)쪽은 한라산 제1횡단(5·16)도로-1139번 도로와 노루생이 삼거리를 이어주는 산록북로다. 그리고 삼거리 로타리를 북서(北西)쪽으로 돌면 산록서로인데 똑같은 1117길이다. 그리고 불과 1㎞ 안 가서 좌회전하면 서남(西南) 쪽 제2 횡단(1100) 도로이다.

노루생이오롬 북서쪽 기슭은 삼거리 쪽이다. 이 곳은 비가 오거나 눈이 녹으면 항상 이곳만 질척거렸다. 길 서쪽에는 한그루 사스레피나무가 보이고 마른 산수국 꽃들이 꽤 보인다. 또한 낙엽 진 나무들은 윤낭(鐘木)으로 보이고 덧나무·단풍나무 종류의 낙엽수들이 대부분이다. 이 오롬 부근의 나무들만 보아도 이곳이 중산간과 높은 지대가 겹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산록북로에는 ‘노루손이오름’이라는 돌로 된 표지석이 보이는 탐방로 입구이다. 그러나 이 길은 탐방로가 아니고 정상까지 이어지는 임도(林道)였다. 그 폭은 4~5m 쯤 돼는 좁지 않은 길인데 이 길은 오롬 북동쪽으로 나가는 흙길이고, 북쪽 비탈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었다.

이 길 끝에 이르면 포장길은 다시 풀밭 길인데, 오른쪽은 도독한 언덕에 탑이 보인다. 탑 주위로는 펜스가 치어 있고 ‘CCTV 설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설치목적, 촬영범위, 관리책임자, 연락처 등이 적혀 있다. 다른 오롬들 같으면 산불지기가 있을 법도 한데 아마도 산불지기가 없는 대신에 CCTV가 설치돼 산불 감시를 하는 듯하다.

소나무 아래는 담팔수들이 꽤 보이고 이따금 큰 키 나무인 졸참나무·산벚나무 몇 그루가 고작이고 꽤꽝낭(가마귀쥐똥)·국수나무 등이 조금 보인다. 이 오롬은 좋은 교통요건과 달리 내세울 게 없는 오롬이다, 이곳에 소나무가 심긴 것은 꽤 오래전으로 보인다. 소나무와 함께 편백나무·삼나무가 심어졌는데 이 오롬이 항상 푸르게 보이는 것은 이 세 종류 나무들 탓이다.

편백·삼나무들은 피톤치드가 있어서 사람의 건강에는 좋다고 하지만 다른 식물들에게는 독성으로 인식되어 다른 식물들과 조화롭지 않다. 노루생이도 나와는 그렇게 4년을 인식하지 못 하는 중에 그 유래를 짐작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어떻게 말하는지 찾아보았다.

1995년 ‘오름 나그네’를 쓴 김종철이나 •1997년 제주도 발행 ‘제주오름’에서 ‘노리는 노루의 제주 방언이며, ‘손’은 ‘쏘다’의 옛말로 노루가 많아서 노루사냥으로 이름났던 오름에서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08년 김승태의 ‘제주의 오름 368’에서도 같은 내용이다.

제주도에서 소는 외양간에서 겨울을 보내지만 말들은 겨울이 들면 마을 근처 촐왓(초지)으로 내려와서 겨울을 난다. 비고 163m, 해발 612,2m인 이 오롬은 449.2m에서 솟아오른 오롬이다. 한겨울에는 소나 말이 없으니 노루가 물 마시던 노루샘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4년 전에 이런 견해들에 동의 되지 않았으나 필자의 견해를 밝히지 못하기에 아직껏 이 오롬을 소개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이번에 동향의 김익수 선배와 이 오롬의 유래를 논의하던 중에 김 선배는 “생이라는 말은 샘의 와전으로 보인다”라고 하며 “제주에 ‘민오롬’이 많으나 지금 민오롬으로 있는 곳이 없지 않냐?”라고 하며 그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전에 조천 세미오롬을 12번 찾았으나 세미(샘)를 찾지 못하던 중에 근처에 사는 부인이 한참 떨어진 곳에 세미(샘)를 가르쳐 주어 찾았으나 솟는 샘이 아니라 ‘고인 물’이었다. 그래서 번쩍 스치는 게 있었다. 앞서 말한 질척이던 그곳이 ‘세미’였다는 확신이다. 지금 세미는 사라졌지만, 그 질척이던 곳이 옛날에는 세미오롬처럼 물이 고이는 세미였다.

노루생이 서남쪽은 제주시 수원지인 어승생이다. 수원지가 생기기 전에는 아흔아홉골까지 흐르던 물이 끊겨버렸다. 또한 천왕사·도립공설묘지·국립묘지·승마장 등이 들어서며 물길이 바뀌고 지형이 바뀌며 노루세미 물도 마르게 되었다. 제주에는 이렇게 말라버린 샘이 많다.

에전에는 샘과 못들이 엄청 많았는데 송당 거친오롬 쇠물통도, 우리 마을의 대지장 못도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노루생이 앞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좌로는 골머리 오롬, 우로는 하얗게 눈 덮인 어승생오롬이다. 노루생이는 이제 푸르러 지지만 아직도 겨울 속에 잠들어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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