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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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0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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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논설위원

결혼 후 처음으로 가본 교토는 평화로웠다. 살면서 무언가를 처음 접했는데 그 순간이 이렇게나 선명하게 기억되는 전에 없던 평화로움. 일상생활에서 터져 나오는 소음과 수많은 얽힘. 이에 따라 지치고 헝클어진 몸과 맘은 잘 정돈되고 소중하게 보존되어 있는 교토의 유적들을 찾아가 만날 때마다 따스해지고 고요한 기운이 몸속에 다시 차오르는 듯했다.

‘어떻게 이 커다란 하나의 도시가 이리도 정성스럽게 오늘날까지도 가꿔져 있는 걸까?’ 궁금했다. 이후 자연스레 교토에 대해서 공부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가 확인하는 여행으로 참 좋았던 몇 해를 보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알게 된 ‘호코지’와 ‘도요쿠니 신사’, 그리고 ‘이(비)총’.

임진왜란의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 인생의 정점’에서 건립하기 시작한 절이 호코지였고 조선인들의 머리와 귀, 코를 전리품으로 가져가 전공으로 가늠하고 모아놓은 것이 ‘이(비)총-귀(코)무덤’이며 히데요시 사후 그를 ‘신’으로 모시는 장소가 도요쿠니 신사였다.

‘기묘한’ 것은 ‘이 세 가지 상징’의 ‘배치’였는데 ‘조선 침략기’의 위세를 뽐내는 ‘절’과 그를 신으로 받드는 ‘신사’, 그리고 그 정면에 ‘희생자들의 무덤’을 함께 모아 놓았다.

‘왜 사백 년 넘게 ‘피해자’들을 ‘가해자’ 앞에 두었는가?’ ‘왜 우리는 조상님들의 주검을 고국으로 모시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히데요시 생전에 조성된 코무덤은 이름이 흉측하다 하여 귀무덤으로 바꾸어 불렸으나 2003년부터 귀(코)무덤으로 함께 적게 되었다. 호코지와 도요쿠니 신사는 멸실과 재건이 반복되다가 메이지유신 이후 제국주의적 정세 속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민관의 노력으로 1990년 경남 사천의 조명군총으로 코무덤의 유토를 일부 봉환해 안장하고 위령비를 세웠으나 일본 정부는 1968년에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만큼 무덤 자체의 이장은 불허했다고 한다.

낯설었던 ‘기묘함’이 ‘슬픔’으로 변해가는 걸 느꼈다. 좋아했던 만큼 더 차갑고 더 날카로운 섬뜩함. ‘쓰라림’이란 이런 것인가….

전국시대의 영웅, 맨손으로 시작해 세상의 중심에 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 생의 정상’에서 ‘호코지’의 건립을 시작하지만 이는 동시에 ‘추락의 시작’이기도 했으며 이어지는 임진왜란은 그 ‘멸망’의 곤두박질을 더욱더 짓누르는 마지막 ‘발광’이었으리라.

‘천하인’이라는 관직을 받고 ‘나는 신이 아닐까?’라는 자문까지 하던 히데요시는 정유재란 중에 사망하고 이 ‘7년의 살육전’ 끝에 거의 유일하게 얻어낸 전리품이 바로 그네들조차 흉측해 이름을 바꾸어 불렀던 ‘코무덤’이다.

이제 5세밖에 안 된 아들을 후계로 남기고 죽어가는 히데요시, 총명했던 그에게는 미래가 보였던 것일까? 마지막 순간에 그가 남긴 절명시는 이렇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노니, 오사카의 영광이여 꿈속의 꿈이로다.’ 삶에 대한 허망함이 잘 표현된 명문이다. 

히데요시 사후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과업인 호코지를 완공하지만 절의 범종에 쓰인 문구가 빌미가 되어 또 한 번의 살육전이 일어나고 도요토미 가문도 멸망하게 된다. 

나의 건방진 망상일지는 모르겠지만 허무하고 공허했던 생을 다 흘려보내고 이제는 깨어나고자 했던 ‘꿈속의 꿈’이건만 히데요시의 후손들은 그를 빠져나올 수 없는 악몽 속에 가두어 둔 것 아닌가 싶다. 

인생 최악의 실패인 조선 침략의 결과물 ‘코무덤’ 앞에, 가문 멸망의 단초인 호코지의 옆에, 그를 모시는 신사를 지어 사백 년이 넘도록 그 실패와 멸망을 마주하고 있으니 조선인들의 고통은 물론이요, 그도 괴롭지 않겠는가? 

전후 조선과의 관계 회복을 청하는 에도막부에 조선의 사절 송운대사 유정은 이렇게 말했다. 
“통화의 여부는 오로지 일본이 성실한가 아닌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 후손들이 ‘성실하지 못한 추모’를 하는 것은 아니기를…. 조선의 후예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바라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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