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 질문의 중요성
근본적 질문의 중요성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3.0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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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울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논설위원

질문이 사라지고 있다. 질문이 사라지는 시대는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진화해 왔고, 언어는 사유와 논리의 산물이다. 논리적 사유는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 조건이고, 논리적 사유를 하는 한 질문이 없을 수 없다. 질문이 있어야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고, 토론이 있어야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질문과 토론에 인색하다. 아마 주입식 암기교육이 가장 큰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의제를 설정하고, 자료를 찾아 검토하고, 자기의 생각을 정리한 다음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며 대안을 찾아나가는 과정, 그 이상의 공부는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단순 암기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토론 과정은 그 자체로 영원하다.

단순 암기는 오직 하나의 정답을 전제한다. 그 정답을 잘 찾는 이가 모범생이고 우수생이다. 하지만 질문과 토론은 무수한 답변의 가능성을 상정한다. 정확한 근거와 논리적 답변을 제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 길은 다양하고 가변적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다. 엉뚱할수록 좋은 답변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우리 후세대들에게 강조해야 한다.

질문은 평등을 전제한다. 나이와 성별, 학력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질문은 인간적 평등을 기반으로 한다. 모든 인간은 모든 인간에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에 성역은 없다. 궁금증이 있다면 어느 누구나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을 회피하거나 질문을 틀어막는 자는 사회의 리더가 될 자격이 없다. 민주주의의 암적 존재다.

질문은 그 자체로 모두 소중하나, 좀 더 좋은 질문은 있어 보인다.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가. 근본적 질문이 좋은 질문이다. 말이 거창하지만 근본적 질문이란 어린 시절 누구나 가졌음직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뇌리에서 사라져버린 질문들이다. 해결이 돼서 사라진 게 아니라 해결이 안돼서 그리고 앞으로도 해결이 안될 거 같아 사라져버린 질문들이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질문, 그렇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하기에 망설여지는 질문, 우리는 그러한 질문들을 계속 던져야 한다. 폴 고갱이 그의 그림에서 했던 질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답이 없다, 그래서 무의미하다가 아니라, 답이 없기 때문에 유의미하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외에도 근본적 질문들은 너무나도 많다. 우리는 전문적이고 기능적 질문에는 익숙하다. 그런 질문에 답을 잘하는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존칭한다. 사회가 분화되고 복잡해지는 만큼 우리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잘 길어내야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기능적 질문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갈증과 허기가 있다. 전문적 지식을 넘어 보편적 지식에 대한 탐구, 현상을 넘어 근원과 본질에 대한 탐구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개인도 사회도 개방적이고 민주적이 될 수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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