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슬로 걷기
청산도 슬로 걷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2.2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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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주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연초에 슬로우 길로 알려진 청산도에서 3팀의 부부가 1박 2일 추억을 쌓았다. 최근 자녀를 혼인시킨 지인이 청산도가 고향이라 초청하였다. 지인의 모친은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어 자녀들을 공부시켜 육지로 보내고 홀로 청산도를 지키고 있다. 장남의 첫 손자 결혼식에 관심을 쓰신 노모가 몸살이 나서 고향 집으로 가는 것보다 펜션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펜션은 오후 3시부터 입실이라 우리는 점심을 먹고 ‘서편제’, ‘봄의 왈츠’ 촬영지를 돌아보았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하여 슬로길이라 붙여질 만큼 매력적이다.  햇볕이 따뜻해서 유채 모종이 뿌려진 들녘이 초록으로 가득하다. 멀리 보이는 전복양식이 바다 가두리를 형성하고 전형적인 어촌과 산촌마을이다.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행복한 오후를 즐겼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다고 하더니 펜션에 입실한 후 빗방물이 내린다. 펜션에서 숯불구이를 먹는 것은 최고의 기쁨이다. 갓 잡은 돔과 전복, 고등어, 삼치, 오겹살을 구워 행복한 저녁 만찬을 즐겼다. 6명이 이야기꽃을 피우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자 옆에 있던 야옹이와 강아지도 덩달아 포식을 하는 날이다. 여행객들의 인심을 알고 있는지 포동포동한 강아지는 고기 한 점을 받을 때마다 좋다고 꼬리를 흔들어 댄다. 

맛있는 저녁이 끝난 후 펜션에서 놀거리로 윷놀이를 결정했다. 제주에서는 종지에 작은 윷을 가지고 놀기에 남편은 얼른 나무를 잘라 윷을 만들었다. 부부가 한 팀이 아니고 다른 팀들과 조를 짜서 진행하였다. 흥미진진한 게임이 모두를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윷놀이는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잡는 반전이 있어 재미있다. 승리가 눈앞에 있지만 어느새 뒤에 있는 팀에서 잡고 잡히는 매력이 윷놀이의 묘미이다. 여행팀이 같이 먹고 같이 놀며 어느새 우리는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잠은 남자팀 여자팀으로 나누어 자면서 여자들은 남편들 흉보기로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이야기꽃을 피우다 어느새 한밤을 보냈다. 

아침은 어제 먹고 남은 전복으로 죽을 만들어 먹고 청산도를 드라이브로 섬을 돌고 오전 11시 배로 청산도를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뿔싸! 자연의 섭리로 아침 바람에 파도가 세게 불더니 배가 출항할 수 없다는 안내가 방송되었다. 날씨가 궂으니 섬이라는 곳이 예민하게 느껴진다. 현재 날씨 상태로는 출항이 어렵다하여 우리는 청산도 올레 11코스를 드라이브와 군데군데 걸어서 돌아보기로 했다. 외지인들끼리는 알 수 없는 길, 청산도민의 안내에 따라 속살 투어를 단단히 하였다. 미항길, 사랑길, 고인돌길. 낭길, 범바윗길을 돌아보았다.

둘레길을 돌며 지인의 모친 댁에 방문을 하였다. 청산도에 와서 어르신을 뵙고 가는 게 인지상정이데 하늘은 우리에게 예의를 다하라는 준엄한 명령을 주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반갑게 대하며 젊은 시절 고생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안방에는 어머니 환갑을 맞아 찍은 사진이 어머니와 아들 둘, 사위, 딸, 며느리와 손자 3명이 어린이 모습으로 있다. 다복한 가족 사진이 어머니의 젊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 

담소를 나누는 사이 파도가 조금 잦아들었는지 오후 5시에 출항한다는 방송이 안내되었다. 우리는 어머니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아쉬운 작별을 나누었다. 어머니의 댁을 나와 미로길을 돌아보며 아기자기한 모습들에 반해 버렸다. 1937년 동아일보에 실린 청산도 소개, 고등어 삼치 대활황 기사가 쓰여진 길도 돌아보았다. 아름다운 청산도의 여행이 마감되었다. 이렇게 남도의 여행 하나가 추억으로 남는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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