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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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24.02.2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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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 수필가

자장면집에 가면 무조건 곱빼기를 시키던 친구가, 오늘은 웬일인지 보통을 주문한다. 왜 보통을 주문하느냐고 물었더니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왔다나 다른 수치는 ‘보통’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우리 사람들은 보통이라는 말에 위안을 받는 경우가 많다. 미세먼지 농도도 그렇고, 길 막히는 것도 그렇고…

평범하고 흔한 상태를 뜻하는 보통, 특별하거나 드물지 않고 평범한 것이거나 또는 뛰어나지 않고 열등하지도 않아 중간 정도인 것을 우리는 흔히 보통이라고 한다.
보통이란 말이 나왔으니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때 민주정의당 후보로 나선 노태우가 내걸었던 “보통사람”이란 말이 생각난다. 

4성 장군 출신의 정치인으로 전두환 정부에서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친 사람이었지만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군인 출신 대통령에 의해 20여 년간 이어진 권위주의식 집권에 대한 피로감이 극대화됐던 만큼 그래서 군인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지우고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선거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그것이 바로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였다. 그리고 틈만 나면 “이 노태우, 여러분과 똑같은 보통 사람입니다. 이 사람 믿어주세요”를 외치고 다녔다. 결론적으로 이 슬로건을 내세워 대한민국 대통령까지 올랐다. 당시 시대 분위기를 캐치한 저 캐치프레이즈는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 안정된 나라를 만들어 주길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 등등이 있었지만, 자신을 초월하는 매우 범상치 않은 초인보다는 자신과 닮은 평범한 정치인에게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허망하게도 국민들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물태우라는 별명만 얻고는 임기를 마쳤다. 

이제 총선이 얼마 안 남았다. 지금도 선거철만 되면 많은 정치인들은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며 떡볶이를 사 먹는 등 평소에 하지 않던 보통 사람을 흉내 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젠 신물이 난다. 

현대사회의 보통은, 평범함과 흔함을 넘어선 지 오래다. 어쩌면 가장 이루기 힘든 목표가 돼버렸는지도 모른다.

건강도, 생활도, 인간관계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니까. 그런데도 단골 순댓국집에 가면 ‘아주머니! 여기 특대 같은 보통이요’를 외치곤 하니, 보통 욕심이 아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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