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 만에 가족 품으로...4‧3희생자 발굴유해 두 구 신원확인
76년 만에 가족 품으로...4‧3희생자 발굴유해 두 구 신원확인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4.02.20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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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
제주도 "유가족 채혈 독려할 것"
4‧3희생자 유족 이한진씨(왼쪽 사진)과 강기수씨가 76년만에 돌아온 가족들의 유해 앞에서 각자 사진을 올려놓고, 이름표를 달고 있다. 사진=임창덕 기자(kko@jejuilbo.net).

“4‧3 바로잡기에 힘써주신 여러분 덕에 76년만에 형을 만나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많은 분이 축하해주신만큼 이제는 (형님이) 편안하게 쉬셨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열린 세계제주인대회 참석 차 입도해 진행한 행방불명 4‧3희생자 유가족 채혈로 형 고(故) 이한성씨를 기적적으로 찾은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장이 20일 오후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평화재단 주최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를 찾아 감사를 표했다.

오랜 세월 아버지 고(故) 강문후씨의 유해를 찾아나선 강기수씨 또한 같은 날 벅찬 가슴에 말을 잇지 못하며 청중들 앞에서 감사하다고 말했고, 좌우로 큰 절을 올렸다.

76년만에 4‧3희생자 발굴유해 2구가 추가로 가족의 품에 돌아간 역사적 순간이었다.

두 유족 대표는 70여 년만에 돌아온 유해 앞에 미리 준비해온 영정 사진을 세우고 두 손 모아 속삭이며 기도하는가 하면, 유해 앞에 이름표를 달고 오랜 시간 보관함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이로써 지난해까지 도내에서 발굴된 413구의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이날 봉안관에 봉안된 2명을 포함해 143명. 그러나 아직 270구의 유해의 신원은 밝혀지지 못하면서 유족들의 아픔이 더해가고 있다.

고(故) 이한성씨는 4ㆍ3 당시 군경토벌대 폭압으로 피신 생활 중 1949년 6월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군경의 유인물을 보고 경찰에게 자수했지만 군경 회유와 달리 1949년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 받아 행방불명됐다. 지난해 제39회 군법회의 직권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고(故) 강문후씨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치안질서 명목으로 시행된 예비 검속에 따라 1950년 7월 이유도 모른 채 모슬포경찰서 안덕지서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두 유해 모두 유가족 채혈을 통해 신원 확인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이번 유전자 감식을 주관한 이승덕 서울대 법의학연구소 교수는 “이번 추가 신원확인이 가능했던 것은 새로운 유가족이 많이 참여해주셨기 때문”이라며 “아직 이름을 찾지 못한 유해가 많은 이유는 워낙 계셨던 상태가 좋지 않고, 아직 유가족 참여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유가족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도 계속 신원 확인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아직도 우리 곁에 소중한 가족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유족분들이 많다. 도내 발굴 유해 중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유해들이 하루 빨리 가족 품에 돌아갈 수 있게 추가 채혈을 독려하겠다. 제주도는 행방불명 가족이 모두 돌아갈 때까지 신원을 밝히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도는 오는 11월 29일까지 제주시 한라병원, 서귀포시 서귀포열린병원에서 4ㆍ3 행방불명 희생자 직계ㆍ방계 혈족 8촌까지를 대상으로 신원 확인을 위한 유가족 채혈을 진행 중이다.

김나영 기자  kny8069@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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