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적 가치.문화경관 가치를 지닌 소중한 문화유산
농업적 가치.문화경관 가치를 지닌 소중한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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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2.2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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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제주일보-KCTV 크로스미디어 기획
제주밭담 특집, 우리는 돌 위에 산다
(1) 제주의 돌담 그 가치를 다시 조명하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한 ‘빌레’.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한 ‘빌레’.

지금으로부터 약 200만년 전, 바닷속 해저에서 뜨거운 마그마가 얇은 지층을 뚫고 바닷물과 만나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섬 탄생의 시작이다. 그 후 오랜 시간에 걸쳐 거듭된 화산활동은 수많은 화산체와 넓은 용암대지를 만들어갔다. 이렇게 생겨난 제주 섬의 첫 모습은 넓은 돌의 대지, 그 자체였다.

제주시 동쪽 구좌읍에는 용암이 흘러 굳은 넓은 면적의 암석이 많다. 이런 용암지형을 제주에서는 ‘빌레’라 한다. 빌레가 많은 밭은 농사 면적이 작을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돌덩이를 부숴야 했던 제주 사람들. 돌을 부수고 떨어져 나온 돌들을 옆으로 치워 쌓아 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돌담이 형성됐다. 이것이 밭담의 기원이다. 

화산섬으로 생성된 제주는 돌과 떼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말 그대로 돌 위에서 살아야 했던 선조들에게 돌은 극복의 대상이자 더불어 살아야 할 환경이었다. 동시에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견고한 재료가 돌이기에 사람들은 다양한 돌담을 만들어 활용했다. 집의 외부를 둘러쌓은 집담, 밭의 경계를 이루고 작물을 보호는 밭담, 바다에서는 밀물과 썰물을 이용해 고기를 잡았던 원담, 해녀들의 몸을 녹이고 쉴 곳이 되는 불턱, 방목된 말과 소가 무덤을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한 산담 등 그 쓰임과 의미가 다양하다. 집담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태어나 밭담과 원담 안에서 먹고 살았고, 훗날 산담 안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기까지, 제주의 돌담은 인간의 삶과 꼭 닮았다.

제주시 한림읍 금성리에 위치한 밭담. 돌 틈 사이로 푸른 작물이 보인다.
제주시 한림읍 금성리에 위치한 밭담. 돌 틈 사이로 푸른 작물이 보인다.

제주의 돌담은 농업적 가치 외에도 제주의 미학을 대표하는 빼어난 문화경관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흔히 제주도를 점, 선, 면이 조화를 이룬 곳으로 표현한다. 제주 섬 전역을 휘감고 있는 밭담은 곡선의 아름다움으로 제주의 미학을 대표한다. 검은 색 현무암의 밭담은 초록의 밭작물이나 유채꽃 등 철따라 피어나는 색색의 꽃들과 어우러지며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사람이 쌓은 돌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경관 유산으로서 그 가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밭담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몇 지역을 샘플링해 전체 길이를 추정해 본 연구 사례가 있다. 이 연구에서는 밭담이 총 2만2108km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지구 반 바퀴를 돌고도 남을 길이다. 그리하여 제주의 밭담을 두고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부르기도 한다. 고성보 제주대학교 산업응용경제학과 교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m당 3000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밭담의 길이를 감안하면 약 660억원의 가치가 있는 셈이다.

고려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있는 판관 김구와 제주 밭담의 기록.
고려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있는 판관 김구와 제주 밭담의 기록.

제주 사람들은 언제부터 밭담을 쌓았을까?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시대 1234년, 판관 김구가 주민들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밭담을 쌓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김동전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1234년 김구가 제주 판관으로 왔을 당시 여러 가지 토지분쟁이 있었다. 권력이 있거나 힘이 센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의 밭을 침범해서 점차 자기 밭으로 만드는 부정들이 많이 발생해 토지분쟁이 빈번했던 것이다. 이후 김구가 밭과 밭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돌담을 쌓으라는 정책적 권유를 하면서 밭담의 제도적인 바탕이 생겨났다. 문헌상 1000년의 역사가 있는 밭담이지만 전문가들은 그 이전부터 돌담을 쌓고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시대보다 훨씬 앞선 7세기 중국의 문헌에는 ‘탐라의 집이 둥글게 돌담을 둘러 풀로 덮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는 탐라국의 탄생 시기로 본다면 돌담은 20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밭담은 밭 농업 중심의 농업경영이 이뤄지고 있는 제주에서 매우 긴요한 기능을 해왔다. 거센 바람을 걸러내어 농작물의 생육을 돕고 농경지 표토가 바람에 의한 비산과 비로 인해 유실되는 것을 완화함으로써 제주 농업을 지켜온 버팀목이 바로 제주밭담이다. 그로 인해 밭담의 가치는 2014년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가 지정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선정됐다.

제주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돌담. 그중 밭담은 제주의 돌문화 요소 중에서도 가장 넓은 분포를 지닌다. 해안가부터 오름 자락에 이르기까지 제주 사람들의 삶의 공간, 그 속에서 빚어내는 경관의 아름다움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지속가능성, 제주 돌 문화를 대표하는 밭담은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특별취재팀(KCTV제주방송) 김석범(KCTV제주방송 보도국장), 박병준(KCTV제주방송 기자), 이현(KCTV제주방송 PD)

*‘우리는 돌 위에 산다’ 기획 프로그램은 KCTV 제주방송 홈페이지와 VOD 다시보기를 통해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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